문상오 소설가

온 나라가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터진 연평도 피격사건으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호전적인 북한 권부는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연일 '서울 불바다'와 '피의 보복'을 외쳐대고 있다.

거기에 응사라도 하듯 우리 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전면전을 불사하고라도 김정일 부자가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속 시원한 한방'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성적 판단이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전쟁이 몰고 올 참혹함과, 그로인해 겪어야 할 통한의 절규쯤은 잊은 듯하다.

과연 전쟁을 해야 할까. 전쟁을 해서라도 김정일 부자를 제거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할까. 전쟁을 하고나서 통일이 된다면 무궁화 꽃이 삼천리강토에 만발할까.

결단코 아니다.

전쟁은 지배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은 허울에 불과할 뿐 역사 이래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전쟁은 없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초병(草兵)들은 흔적도 없고, 오직 전쟁영웅만이 있을 뿐이다.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 카르타고의 맹장 한니발, 유럽은 물론 이집트를 포함한 아시아 대륙까지를 석권한 알렉산더 등, 전쟁이 있을 때마다 영웅은 혜성처럼 나타났고,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 전란 통에 죽어나간 수백만 아니 수십억에 달할 민초들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를 두고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할렛 카아는 일침하지 않았던가. '한두 명의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로 처벌 받지만 전쟁터에서, 수만 명의 적을 죽인 자는 영웅으로 대접 받는다'고.

우리는 지금, 감정을 누르고 냉철해져야 한다. 북한의 집권자들에겐 권력세습과 그 후 있을지도 모를, 이탈세력에 대한 경계가 있을 뿐이다.

인민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이다. 한반도의 상황을 긴장시키고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 북한 내부를 결속시키는 것만이 목적이다. 저의가 이러한데도 저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날 것인가. 막말로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라. 그 참상과 비극을 상상이나 해 보았는가.

전선에 배치된 우리 측 병력이 65만이고 북한 병력이 120만이다. 하나같이 고귀한 생명들이고 내 아들 딸이다. 꽃다운 이들을 정녕 사지로 내몰아야 한단 말인가. 전면전이 시작되면 10분 이내에 쌍방 4만여 발의 포탄이 일시에 교차된다. 그 파편이 어디로 갈 것인가. 서울이고 평양이며 바로 우리 집 안마당이다.

그러나 이런 재래식 무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비대칭 전력, 즉 생화학이나 핵무기 같은 대량 살상무기이다. 이것들이 가져올 가공할 위력과, 그 결과 겪게 될 이 땅의 비극은, 결코 생각하기조차 두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그렇게 해서 통일이 이루어진다 치자. 단 한줄기 희망의 싹도 틔울 수 없게 된 폐허의 땅. 포연과 통곡만이 죽음의 계곡을 이룬 허허 벌판에서, 통일 대한민국이라고 만세라도 부르자는 말인가.

'인류가 전쟁을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는 케네디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성탄절이다. 십자가에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평화와 사랑을 외쳤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회 안에서만 외칠 것인가.

이 땅의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뼈를 깎는 심정으로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전쟁,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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