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박 미 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매섭게 찬 바람이 옷섶을 파고 들 때쯤이면 누군가를 돕고자 복지관을 찾는 고마운 분들의 발걸음이 있어 아직 세상의 온기가 따뜻하게 남아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곤 한다. 기부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나눔의 손길에 동참하는 분들의 가슴 훈훈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 기부 활동의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이 있다. 직접 수혜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사회복지 현장의 비리 소식들이 전파를 타면서 시설 기관의 신뢰도가 상실되고 투명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원인에 기인해서인지 근래 기부는 물품 지원이나 일시 후원을 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 결연 후원의 경우는 별도의 은행 증빙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까지 있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은 강조되어야 마땅하고 또한 사회복지기관의 투명한 집행과 결과 공개는 당연한 책임이기도 하기에 이미 현장의 사회복지 시설 기관들은 투명한 집행과 결과 공개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기관의 투명한 집행과 결과 공개에 신뢰를 갖는다면 기부금 활용에 대한 또 다른 방안을 제시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500만원의 기부금을 50명의 아동 혹은 어르신에게 각 10만원씩 나누어 주었다고 치자.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10만원이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활용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10만원으로 이들의 경제 상황이 호전되거나 자립의 기반이 마련되거나 행동이나 생활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반면 500만원의 기부금을 가지고 50명의 아동 혹은 어르신에게 의도적으로 계획되어진 전문성 있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한 경우를 비교해 보자.

연간 예산 500만원으로 약 40여명의 저소득 독거 어르신에게 '행복 증진 집단 프로그램'을 제공한 결과 이들의 자아존중감이 4.1점 높아졌으며 생활 만족도 또한 12.6점 높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복지관에 밥 한 그릇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을 평가하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복지관은 물론 복지관 주변 환경 정화 활동까지 솔선수범하여 정기적으로 펼친다. 또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던 분들이 이제는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관계로 성장한 것을 관찰 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복지관에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넘쳐 나고 가슴에 평생 안고 살아 온 상처들이 치유되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높아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물론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관계의 변화가 나타나고 정서적 지지와 친밀감이 형성되자 지역 활동까지 연계되는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진정 궁극적인 복지 목적에 부합하는 변화가 아닐까!

사회복지는 물고기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함께 만들어 내는 일이고, 물고기가 살고 있는 물가로 인도해 주는 일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처럼 '100만원을 투자해 200만원의 잉여물을 생산했다'는 식의 결과물을 금방 보여주기가 참 쉽지 않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수혜를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전문화된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행동의 변화, 생활의 변화, 태도의 변화, 삶의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을 지원해 사람들의 자립 기반 마련과 역량 강화를 통한 사회복지 목적에 좀 더 근접할 수 있다.

사회적 공동체 건설을 위한 기부 활동이 서로 간의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사회복지 시설 기관들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투명성 있는 집행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 이에 대한 믿음으로 기부자들의 마음도 활짝 열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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