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2010년! 당신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구려. 옛말에 가는 사람 돌로 치고 오는 사람 떡으로 친다는 말이 있지만, 가는 年 당신에게 돌팔매질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법칙이니 가고 오는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야 할까 봅니다. 그래도 당신을 떠나보내려는 마음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이제 당신이 떠나고 나면 2011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요. 그 年은 당신보다 더 자비로우리라 믿어도 될까요. 당신은 우리를 너무 많이 울렸습니다. 때로는 웃음도 선물하고 즐거움도 주었지만 기쁜 일보다는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았음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요. 먼저 당신이 우리에게 안겨준 가슴 아픈 일부터 거론해 보겠습니다.

2월 24일 당신은 김길태 라는 후안무치한 인간이 성범죄를 저지른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심신이 자유롭지 못한 여중생을 성폭행한 다음 살해하여 물탱크 안에 유기한 사실 말입니다.

왜 그 일을 보고만 있었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겠지만, 그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분노에 치를 떨었고,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 일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천안함 사건입니다.

3월 26일 조용하던 한반도에 당신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 772 천안함을 반 동강 나게 한 사건은 천인공노할 사건이었습니다. 반 토막 난 함정이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온 국민은 가슴을 치며 분노의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미처 피어나지도 않은 우리 해군 병사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당신은 그런 징후를 미리 알고 있지 않았었나요. 우리 해군에게 미리 알려주지는 못해도, 도발해오려는 저 괴수들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왜 호통을 치지 않았나요.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꽃 무슨 말로 위로하렵니까. 저들은 뻔뻔스럽게도 자기네가 행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나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려주세요.

저들의 만행은 또 있습니다. 11월 23일 조용하던 연평도 마을을 포격,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는 게 불문율인데 저들은 170여 발의 로켓포를 연평도에 퍼부었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과 건물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의 순간이었습니다.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 전사,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민간인도 2명 사망, 3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북괴의 그 포격으로 말미암아 연평도 주민은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찜질방 등에서 피난 아닌 피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남의 일처럼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습니다. 나 같았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북한의 김정일을 잡아다 볼기를 쳤을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을 내세워 3대 세습을 이어가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독재정권이 아닙니까. 그리고 폐허가 되다시피한 연평도 재건에 드는 비용을 지급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가는 年! 너무 섭섭하게만 생각지 마시오. 지금까지는 당신이 우리에게 준 슬픈 일만 거론했지만, 이제는 기쁜 일도 상기해 보렵니다.

6월 11일부터 한 달 동안 남아공월드컵이 열렸었지요.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는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역시 월드컵 16강 문턱은 높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원정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라가는 승전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16강에 오르기까지는 허정무 감독의 치밀한 전술 아래 양 박(박지성, 박주영) 쌍 용(이청용, 기성용)을 비롯한 선수들의 피와 땀이 결정체를 이루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16강에 오르게 해 준 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기쁜 일 또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종합 2위의 성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것도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라는 역대 원정 최고의 성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 선수는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수영 평영 200미터에 출전한 새내기 정다래 선수는 금메달을 건져 올려 아시아를 깜짝 놀라게 했죠. 3관왕에 오른 박태환 선수는 2010년을 빛낸 스포츠 선수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는 年! 당신이 우리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노루꼬리만큼 밖에 남지 않았군요. 오늘이 가기 전에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재앙 모두 걷어다 저 바닷물 속에 처넣어버리시고, 오는 年 편에는 세계 인류의 평화와 안정, 그것도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행복 한 보따리 들려 보내주시오.

▶충북 괴산 출생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현)
▶충북수필문학상수상 (2004)
▶수필집 '달팽이의 외출' '예일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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