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자체 구제역 뒷북 행정에 축산농가 분통

"구제역 발생 이후 친분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지자체에서 방역이나 예찰과 관련된 현장방문은 커녕 주의를 당부하는 전화 한 통 걸려 온 적이 없어요." 〈관련기사 4면〉

정부의 구제역 국가위기대응 단계가 최상위인 '심각(Red)'으로 격상되는 등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축산농가들이 충북도와 지자체의 뒷북 행정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충북 청원군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한 주민은 "정부와 지자체는 구제역 확산에 따른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축산농가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삶의 기로에 서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렇게까지 감정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위기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이후 충북도는 국가기반보호상황실의 통합기능을 강화하고 사고수습지원반을 확대 편성은 물론 지난 4일까지 도내 각 시·군 139곳에 구제역 방역초소를 설치 완료했다. 또 추가로 28곳에 대해 구제역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충북도내 축산농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이 구제역 확산속도 보다 한 발 느리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 방역초소 운영 허점

구제역 방역초소는 통상 각 시·군간 경계와 축산농가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가 이뤄진다.

하지만 충북 청원군과 북이면 석성리는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진천군과 경계지역 인데다 인근에 증평IC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역 방역 초소가 아직까지 설치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축산농가 규모가 보은군과 비슷해 구제역이 확산될 경우 지역경제의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는 곳이지만 마을 주 진입로에 차량소독기만 설치돼 있을 뿐이다.

인근의 한 축산농가 관계자는 "지자체가 특별한 대응이 없다가 최근 괴산군에서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차량소독기 지원 늑장

구제역이 번지기 시작하면 각 지자체는 주요도로에 방역초소를 운영하고 축산농가의 예찰 및 방역 활동은 사실상 주민들 몫이 된다.

이는 해당 주민들의 방역에 대한 의식수준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방역 대응 수위가 차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한 현장방문으로 주민들과 교감을 바탕으로 방역과 예찰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구제역이 충북에서 터지자 그제서야 각 마을에 차량 소독기와 약품, 각종 자재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 소독약품 지원도 부족

이번 구제역이 확산 조짐을 보이자 청원군의 한 마을은 축산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 입구에 차량용 소독기를 설치하고 마을을 관통하는 진입로를 차단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했다.

이 마을의 한 주민은 "소독기를 가동을 위해 지자체에 소독약품을 요청하자 '언제 약품이 떨어질지 모르니 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답답해 했다.

이 주민은 또 "한파와 눈이 오면서 도로의 결빙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을 자체적으로 구입하려 했으나 어느 새 가격이 20% 이상 올랐고 그나마 재고가 없어 천일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현장위주 대응 미흡

이번 구제역 파동을 겪는 축산농가들은 막대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정부와 지자체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대처를 바라고 있다.

진천군의 한 축산농가 관계자는 "축산농가는 전 재산인 가축을 지키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방역과 예찰 활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행정기관이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상시 또는 구제역이 발생됐을 때 보다 더 관심을 갖고 현장에 나와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행정지도를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유승훈

idawoori@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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