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상언 ARKO 전국지역 문화지원協 사무국장.문화평론가

공공 문화재단 설립을 두고 지역의 공무원들과 예술가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먼저 공무원들의 생각. '예술가들을 직접 상대하는 골 아픈 일을 덜게 돼 좋지 뭐', '겉만 번지르르하고 별 성과도 없는 일은 이제 그만' 등등. 다음은 예술가들의 생각. '드디어 나도 지원을 받는구나', '거기 들어가 일할 수만 있다면, 아니 우리 협회 회장이라도 들어가게 된다면…' 등등.

이러한 동상이몽은 누구나 가질 법한 인지상정임에도 문화재단 운영의 본질이 생략돼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자체와 지역 예술가들에게 문화재단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지난 몇몇 글들에서 필자는 관료제 하의 공공행정이 개성과 다양성을 고갱이로 하는 예술과는 동반자가 되기 쉽지 않음을 언급하였다. 또 숙명적으로 경직성을 띨 수밖에 없는 절차 위주의 관료주의가 창의성을 으뜸으로 치는 예술의 발전과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문화 거버넌스 체계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그 현실적인 모습의 하나로 문화재단을 들었다.

언뜻 공무원들과 그 조직에만 대고 겁도 없이 떠들어댄 형국이지만, 사실 필자는 예술가들과 예술계에도 할 말이 많다. 연전에 토론자로 나선 어느 광역 단위 문화재단 설립 공청회 자리에서 필자는, 지역의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나 관계자는 재단 직원으로 채용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한 후, 거짓말 좀 보태서 말하면, 청중석에 하얀 성에가 끼는 것을 보았다.

지역 예술가들이 숨기고 있는 '힘 있어 보이는' 일자리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이는 예술가가 문화재단 직원으로서 부적격이라는 뜻이 아니라 문화재단 본연의 사명과 비전을 달성해야 하는 구성원의 자질로서는 '예술성'보다는 '행정력'이 우선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또 지역 예술가들이 암암리에 벌이는 자리다툼을 꼬집고자 했던 것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을 두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는 일부 예술가들의 암중모색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큰일 나겠구나'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문화재단 설립 자체를 지연시키기도 한다.

공공 문화재단은 민관협치의 한 모델임이 분명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엄연한 공공조직이다. 예술 조직이 아니라 행정 조직이며, 예술가 조직이 아니라 행정가 조직이다. 그러므로 문화재단 직원에게는 예술·문화 전문성보다는 행정 전문성이 먼저다.

예술과 예술가의 개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창의성을 존중하면서, 경직성과 관료성을 최대한 지양하고자 하는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전문성 말이다.

그러므로 문화재단은 이러한 자질과 역량을 지닌 직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예술·문화 자체에 대한 전문성은 각종 자문위원, 심의위원, 평가위원 등으로 예술가들을 재단 운영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음은 불문가지다.

여기까지 이르면 다시 공무원들과 예술가들은 말할 것이다. 먼저 공무원. '우리가 그냥 하면 되겠네, 뭐 하러 예산을 들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다음 예술가. '재단은 왜 만들지, 공무원 조직에 우리가 위원으로 참여해도 똑같을 텐데?'

이제 공무원들과 예술가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이 이구동성은 정말 아이러니다. 만들어도 문제, 안 만들어도 문제라면 어쩌자는 말인가? 바로 이 대목에서 문화재단 본연의 사명과 비전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시작된다.

예술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공무원 시스템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또 예술가가 직원이 되어 자신의 예술·문화 전문성을 불편부당하게 행사한다면야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이 경우 예술가 스스로가 떠받들고 있는 자신만의 예술적 소신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다음 글을 쓸 때까지 다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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