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최동준 영동경찰서 교통조사계장

명확하지 않은 도로교통법 규정 때문에 범법행위를 한 운전자들이 사실상의 면죄부를 받는가 하면, 처벌대상이 아닌 사건에 불필요한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어 시급한 개정이 요구된다.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의하면 '차의 교통으로 인해 사람을 사상 또는 물건을 손괴한 때는 즉시 정차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사고 발생시 신고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 제54조 제2항에서는 '운행 중인 차 만이 손괴된 것이 분명하고, 도로의 위험방지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했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별도의 모호한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대부분의 단순 물적피해 사고가 여기에 해당돼 가해자가 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해도 면죄부 대상인 사안에 경찰력을 투입해야 하는 맹점이 있다.

예를 들어 취중에 차량을 운전하다가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고 도주 후에 검거되면 시간이 경과될수록 음주운전 혐의를 규명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또 교통소통에 지장이 없었다는 이유로 합의 또는 보험처리 될 경우 형사처벌 면제대상이 된다.

실제로 일선 교통조사계에서는 물적피해 사고를 내고 도주한 가해자를 힘들여 검거하고 보면 "수리해 주면 될 것 아니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작년 영동경찰서 관내에서 모두 77건의 단순 물피 도주사고가 발생했고, 검거된 피의자 중 대부분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애초부터 처벌대상이 아닌 사건으로 경찰력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원활한 교통소통이라는 도로교통법의 기본 취지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처럼 애매모호한 예외규정이 사고를 내고 도주했다가 검거돼도 '변상하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운전자를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도로교통법 제54조 제2항의 본문은 폐지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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