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재생·부활·부흥의 뜻이 담겨 있는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를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문예부흥의 시금석이 되었다. 14~16세기에 전개되었던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인식하고 새로운 문화가치로 재편하면서 1000년의 세월을 뚫고 근세시대로 새롭게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신플라톤학파의 영향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서 힌트를 얻은 브루넬리스키의 두오모성당과 같은 세계적인 건축, 미술 등이 탄생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성공은 옛 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되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시키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두고 반전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움의 극치였던 고려 상감청자가 퇴락하면서 그 기법이 축적되어 소박하고 자연미 물씬 풍기는 조선의 분청사기와 찻사발이 탄생한 것 역시 법고창신과 반전의 미학의 결정체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경제성장과 첨단 물질문명으로 대변되는 국제사회의 경쟁력에서 뒤질세라 살얼음판 같은 세상사를 조마조마하며 달려왔다. 온갖 고난과 모진 역경을 이겨냈기에 질곡의 세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슬프고 막막하다.

우리 고유의 삶과 정신, 차별화된 문화브랜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체장의 소신과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문화가 홀대되거나 구석진 곳으로 밀리는 현실 앞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세계의 선진도시는 문화를 상품화하고 문화로 복지를 일구며 문화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지역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주의 한옥마을과 전통문화, 안동의 선비정신과 유교문화, 부산의 영상산업, 제주의 관광과 문화의 조화 등 문화콘텐츠가 지역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엿볼 수 있다.

사실 충북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와 얼과 혼을 갖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되었고, 이 땅의 성군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역시 초정리에서 완성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미 1200년대 초반에 증도가자와 상정예문이라는 금속활자본을 찍어낸 기록이 있지만 아쉽게도 전하지 않는다. 오직 1377년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데, 이는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화선진국이었으며, 세계적인 장인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글 역시 세종대왕이 120일간 초정리에서 임시궁궐인 행궁을 짓고 완성했다. 지금부터 578년 전인 1443년의 일이다. 그는 중국에 사로잡히지 않는 올곧은 줏대와 백성들을 문맹으로부터 해방토록 하는 어진 마음과 생활을 유익하고 편리하게 하는 실용정신으로 한글을 만들었다.

또 주자소를 설치하여 인쇄활자를 발전시키고 출판사업을 장려하였다. 충주의 박연에게는 아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제작토록 했으며 동양 최초로 유량악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고려청자의 뒤를 이어 조선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고 대중화에 힘썼는데 그 당시 전국에는 자기소 139개와 도기소 186개의 가마터가 있었다. 과학기술 발전과 예술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행정, 복지, 의료분야에까지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세상에 쉬운 사랑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나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 길을 선택할 이유가 있겠는가. 직지와 한글에 담긴 뜻과 정신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씹어 볼 일이다. 그리하여 미래 100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우리만의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는 시대가 되게 하자. 매섭던 추위도 이제 한 걸음 물러서고 있다. 초라하고 허허로운 우리의 마음에 연분홍 꽃잎이 물들면 어찌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문화도시, 문화복지로 가는 르네상스 충북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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