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전 언론인

지난 음력 섣달의 끄트머리. 동네의 길모퉁이에서 긴 세월 후한 인심으로 이웃과 살갑게 살아온 조금은 작고 허름한 떡 방앗간. 그 떡 방앗간의 처마 밑 한구석에 달린 작은 환풍기가 바쁘게 돌았다.

환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추위를 녹여 주는 듯, 움츠리고 방앗간을 찾은 아낙네들의 어깨가 펴지며 소란해 진다. "영희 엄마 떡하러 왔네." "네, 맛있게 해주세요." "떡이나 밥이나 쌀이 좋아야 해." "네, 직지 쌀인데요." "직지 쌀이면 최고지."

둥글고 하얀 떡이 두 줄로 길게 뽑아지며 김이 모락모락 난다. 방앗간 아주머니의 손이 바빠진다. 일정한 길이로 끊어진 떡 가래는 곧바로 찬 물속으로 잠긴다. 가래떡이 되기 위한 마지막 몸단장이다.

옛날엔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글 솜씨와 겨누며 어둠속에서 손끝으로 썰었다. 우리네 어머니들도 밤늦도록 그랬었다. 그러나 요즘 엄마들은 다르다. 떡 방앗간에서 기계로 싹둑 싹둑 썰어져 나온다. 그래도 둥글고 흰 가래떡은 민족의 대 명절 설을 풍요롭게 한다. 떡국이다. 설날 차례 상에 오르는 음식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나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다. 설날 먹는 떡국이 맛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설렁 설렁 만들어 파는 떡국과는 다르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맛있고,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 그런 연유다. 이처럼 설날 먹은 떡국이 맛있고, 우리가 늘상 먹는 하루 세끼 밥이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은 또한 좋은 쌀로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쌀은 농부들의 정성으로 생산된다. 벼는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88번의 정성어린 땀과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그 벼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 쌀이다.

벼는 BC 3000년대에 인도에서, BC 2700년경(神農時代)에는 중국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 받아왔던 볍씨는 중국 후난성에서 출토된 볍씨였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충북대 이융조교수 연구팀이 청원군 소로리에서 고대 탄화 볍씨를 발굴했다. 소로리에서 출토된 볍씨를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후난성 출토 볍씨보다 약 3000년이나 더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볍씨로 알려졌다. 우리 지역 쌀의 시조 아닐까.

벼는 벼과의 일년초인 식용작물. 줄기는 속이 비고 마디가 있으며 잎은 가늘고 길다. 가을에 줄기 끝에 이삭이 나와 꽃이 핀 다음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를 찧은 것이 쌀이다. 이처럼 맛있고 평생 물리지 않는 쌀도 요즘엔 젊은이들의 식생활 변화로 소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식탁의 주인자리는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요 식량안보이기 때문이다. 쌀의 역사만큼이나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일선 자치단체들은 지역 쌀의 명품화에 앞장서고 있다. 청주 지역의 명품 쌀은 직지 쌀이다.

청주시가 직지 쌀의 홍보와 소비촉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 쌀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주시가 지역의 명품 쌀을 무상급식에 공급하려고 하자 시비가 일고 있다.

청주시는 무상급식 분담금 중 20억원 상당을 지역 쌀로 현물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충북도교육청은 정부양곡을 기준으로 급식비를 산정했기 때문에 현물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청주시는 '청주시 학교급식지원조례'를 근거로 배수진을 쳤다.

우리아이들이 먹을 쌀. 이왕이면 지역의 좋은 쌀이 좋지 않을까. 충북도등은 지역 쌀 소비촉진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무상급식이 실현 되도록 운용의 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