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학 충주여고 교장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의 입을 쳐다보는 고등학교는 입이 마른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이제 270일밖에 남지 않은 예비 고3들에겐 예사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가 별거냐, 그 그릇된 카테고리를 뛰어넘자고 외친다. 오죽하면 '서울대의 나라(강준만,1996)'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서울대는 매력적이며 도전해 볼만한 대학이다.

우선 입학금이 타 사립대에 비해 절반 가량이며, QS(Quacquarelli Symonds) 등의 평가에서 국립대의 한계가 있음에도 국내 대학으로는 가장 순위가 높다. 농어촌 출신이나 배려 계층 학생들을 과감히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인들 보다 실력 있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선발하고 싶지 않을까마는 서울대의 지역 균형 선발제도는 웬만한 읍면 단위 고등학생들도 비교적 쉽사리 합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래서 서울대 정시 모집 합격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는데, 요즘 교육과정평가원이 내놓는 9개월 뒤의 수능 출제 방침이 심히 수선스럽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물론 예년에도 이런 발표가 적중한 예가 별로 없어서, 한 귀로 흘려 버림직도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예감이 별다르다. 작년에 'EBS 수능교재 70% 연계 출제'를 액면 그대로 믿었던 많은 수험생이 추풍낙엽처럼 희망대학에의 꿈을 흩날려 버린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평가원은 작년의 이 들끓었던 비난을 어떻게든 만회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열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 5일 "앞으로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나가겠다"며 "점차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장 올 11월 치러지는 수능부터 지난해보다 쉽게 느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쉽게 느껴지도록' 출제한다는 것의 가이드 라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정보에 빠른 측으로부터는 '만점짜리 1만명 목표'라는 설이 흘러다니고 있다.

이것을 진실로 믿고 쉬운 수능 대비 교육을 시켜야 할지, 그랬다가 작년처럼, 수험생들의 표현대로 '경기(驚氣)'를 할만큼 뒤집히지나 않을지 정말 난감하다.

하지만 정작 더 큰 고민은 그게 아니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었을 때의 혼란상을 평가원은 간과하고 있다.

서울대의 모집 정원이 3천 400명 정도이니, 만점을 맞고도 서울대에 원서조차 내지 못하는가 하면 연·고대나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학생의 심리적 허탈감은 차치하더라도, 평가원장의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대신 상위권 대학은 대학별고사(면접·논술)와 고교내신, 입학사정관 전형 등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상위권 유수한 대학들에게 '본고사'를 도입하라는 취지로 들린다.

수능 만점자들을 놓고 서류·면접·논술(수시 인문계열은 제외한다고 발표했지만)로 당락을 결정하겠다면 이제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의 무대가 될 공산이 크다. 입학사정관제가 이것을 보완한다고 설득하려 하겠지만 수십 명의 사정관이 수천, 수만 명이 넘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의 스팩과 면접을 감당한다는 것을 나는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서울의 유수한 일부대학 전직 사정관들이 고액 상담자로 전업하여 성시(盛市)를 이루고 있는 게 비밀 아닌 비밀이다. 입학사정관은 리더(reader)다. 학생들의 자료를 읽고 비교 분석하여 흙 속에 묻힌 진주를 캐낼 만큼 그들의 눈이 교육적이고 건강하고 밝다고 믿어도 좋은가. 이래저래 대입 전선(戰線)에 놓인 지방 고3생들이 걱정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