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갑자기 민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직원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좋디야? 아 글쎄 전기요금이 30만원이 웬 말인가. 내 평생 이런 요금은 첨이여, 시방 전기회사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겨. 당장 대장 나오라고 혀. 내가 결딴을 낼 것이여"

직원이 납득을 시키려 해도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대고 계셨다. 할머니를 상담실로 모셔와 자초지종을 들어 보았다. 사연인즉슨 이러했다.



지난봄에 시집온 서울에 사는 막내며느리가 시골집에서 추운 겨울을 나실 시부모님을 위해 전기매트 2개를 소포로 보내왔단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라는 효심을 자극하는 TV광고 영향 탓인지 그 며느님은 백화점에서 가장 좋다는 전기매트를 구입했고 '아버님, 어머님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라는 편지와 함께 그 매트를 보내온 거였다.

이쁜 막내며느리 말대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되었고 마을 이웃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급기야 3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고 문의면에서 물어물어 시내버스를 타고 평생 처음으로 한전을 방문하게 되었다.

참 딱하기도 하고 난감했다. 극구 말리는 할머니를 설득하여 그 이쁜 며느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전기요금을 자신이 납부하겠다고 하였다, 오히려 시부모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그 며느님에게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그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면서 '참 효도하기도 녹록치 않구나' 생각하며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몇 년전 내가 민원실에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이러한 광경이 매년 되풀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한전에서는 겨울이 오기 전부터 주택용 누진제도와 전열기 사용요령에 대해 대대적인 안내와 홍보를 하고 있다. 안내문을 보내고 검침원들이 직접 설명하기도 한다.

충북본부에서도 지난 11월부터 방송이나 신문보도를 10여 차례 했고 자막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은 전열기 제조업체의 잘못된 광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신문이나 홈쇼핑 광고 등에서 한 달에 요금 몇 천원 몇 만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주택용전력 최저요금단가를 적용하였거나 가정용이 아닌 다른 용도의 요금단가를 적용하여 계산한 경우이다.

다른 전기기기는 사용 않고 해당제품만 사용한다면 광고대로 요금이 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냉장고, TV 등 기본적인 전기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특히 유의하여야 한다. 광고만 믿고 사용하다가는 평소의 요금보다 수십 배 이상 나오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택용전력 누진요금제는 에너지 소비절약을 유도하고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기본요금과 kWh당 단가가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300kWh 사용으로 한 달에 4만원 정도 요금을 내던 고객이 전기히터 등 전열기제품으로300kWh를 더 사용하게 되면 사용량은 2배 증가하지만 전기요금은 약 20만원으로 평소요금의 5배로 껑충 뛰게 된다.

소비자들은 냉·난방 제품을 구입할 때 제품의 소비전력과 월 예상요금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입해야 낭패를 막을 수 있다. 주택용전력의 월 예상요금은 한전 사이버지점의 전기요금 계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한전 직원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쁜 막내며느리의 효심이 불효가 될 수도 있는 겨울철 전열기요금이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올 봄엔 문의면 대청댐의 그 할머니 경우처럼 난감한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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