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 논설위원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여 건에 달하던 양성판정 건수가 이제는 접수된 의심 신고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소강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구제역이 진정국면에 들어섰다고 해서 구제역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入春(입춘)과 雨水(우수)가 지난뒤 최근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일부 가축이 살처분된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되는 등 구제역 2차 피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가축을 매몰한지 석 달 만에 일부 매몰지역에서는 짐승들의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악취는 더욱 심하게 요동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땅위로 솟아오른 소와 돼지등 가축사체 곳곳에서는 야생동물이 뜯어먹은 것으로 보이는 살처분된 동물들의 처참한 형체도 드러나고 있어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침출수 유출에 따른 지하수 오염도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되고 있다.

방역당국과 지방자치단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매몰지역 붕괴와 지하수 오염 등 구제역 2차 피해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정부는 자치단체 매몰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붕괴 등 문제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현장점검을 시작했다.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차수벽과 옹벽을 설치하지 않았다가 빗물에 동물사체가 떠내려가고 침출수가 대거 유출되는 사태가 온다면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각종 재앙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행여 야생동물들이 사체에 접근한다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다른 곳으로 퍼질 우려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얼마 전 경기도 파주지역에서는 죽은 가축사체와 핏물이 섞인 침출수가 땅 위로 올라오자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떼 지어 매몰지역 주변으로 날아드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트위터에는 구제역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괴담(怪談)들도 나돌고 있다.

살아있는 동물을 생매장한 동물재앙이 환경재앙을 거쳐 인간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전국 4600여 곳에 분산 매몰된 구제역 가축들의 부패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 탄저균이 번지면서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생매장 당한 소와 돼지가 3백여만마리를 넘어서면서 이를 규탄하는 종교단체들의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천도교와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5개 종교 35개 단체는 23일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생매장 위주로 이뤄지는 현행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지난 1월11일 경기도 이천 대월면의 매립지에서 돼지 1천900마리를 산 채로 매립하는 과정을 찍은 미공개 영상을 공개했다.

생매장당하는 돼지들의 절규하는 영상물을 보던 일부 시민들은 오열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구상에는 인간만 살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자연은 생명체들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공간이다.

구제역 사태는 축산농가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위에 관한 문제로 급부상했다.

영국을 경기침체의 깊은 늪에서 구해냈던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은 광우병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해 끝내는 수상 직에서 물러나는 정치적 비운을 맞아야 했다.

아무리 G20정상회의를 멋지게 치렀어도 삼천리금수강산이 침출수로 넘쳐나고, 곳곳이 악취로 진동한다면 MB정부의 공적조차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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