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전언론인

요즘엔 도시 한복판에도 절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절들은 산속에 있다.

산속에 있는 절들은 고즈넉하다 못해 때론 적막하다. 그리고 엄숙하고 고상하다. 산사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모두가 심오한 듯하다. 산사의 분위기에 더욱 그렇다.

말씀언(言)변에 절사(寺)자를 쓴 것이 시(詩)다. 그래 그런지 어떤 사람은 시를 '고상한 언어들의 집합'이라고도 했다.

시는 말로 그리는 그림이라고도 한다. 결국 마음의 그림이란 것이다. 고상한 언어로 마음을 예쁘게 그린 것이란다. 그것을 원고지 위에 표현한 것이 시라고 했다.

자기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도 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를 쓸 수 있다. 시인이 아니기에 문학으로서의 작품성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갖는 희노애락의 순수한 감정을 일상의 언어로 담아낸다면 시 아니겠는가.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

우리들은 때론, 특정한 단어를 주제어로 시를 짓기도 한다. 이처럼 지은 시를 행시라 한다. 주제어가 2음절이면 2행시라 하고, 3음절이면 3행시라고 한다. 이처럼 주제어의 음절을 운으로 하여 짓는 행시는 사회현상을 비판하거나 익살스럽게 풍자한다. 때로는 촌철살인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행시들을 보면 재치가 톡톡 튄다. 예를 들어 주제어 '설날'로 지은 2행시다.

'설' 설마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 '날' 날 두고 가신임은 소식이 없네. '독도'의 2행시, '독' 독도가 일본 땅이면, '도' 도쿄는 한국 땅이다. 3행시도 그렇다. 주제어는 오징어. '오' 오기부리며, '징' 징징거리다가, '어' 어금니에 혀 씹혔다. 등등.

지난 6일 한 일간지가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지난해 12월21일 올라왔다는 시(詩)를 보도했다. 내용자체는 3대 세습을 이룬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의 내용은 이랬다. 김씨일가 나라세워/ 정통성 이어받아/ 일국발전 도모하세/ 미제소탕 목표삼아/ 친위부대 결사하니/ 놈들모두 혼쭐나네/. 두 번째 시는 이렇다. 김수령님 건국하고/ 정일장군 발전하니/ 은혜입어 결사봉공/ 개선문에 청년장군/ 새시대가 열리노니/ 끼리모여 만세삼창/. 그런데 첫 번째 시의 각 행 첫 글자들만 이으면 '김정일 미친놈'이 된다. 두 번째의 시도 각 행의 첫 글자를 이으면 '김정은 개새끼'가 된다.

언뜻 읽으면 3대에 걸친 북한정권의 부자 세습을 찬양하는 '장군님 추앙 시'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뒤늦게 각 행의 첫 글자들을 이으면 세습부자를 비난하는 촌철살인의 6행시임을 알고 난리를 쳤다. 부랴부랴 삭제했지만 이미 수백 명 이상이 읽은 뒤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겉으로는 '위대한 수령'에 이어 '영명하신 장군'을 목청 높여 외치다가 이제는 '청년 대장'을 부르짖고 있다. 또 손에 손에는 붉은 조화를 들고 열광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세습부자 6행시'를 읊으며 카타르시스를 하지 않을까.

북한 주민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암흑 속에서 헐벗고 굶주림에 피골이 상접해 있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중동에서 번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가져온 중동의 시민혁명을. 또 중국으로 이어진 여진의 충격을.

요즘엔 북한 주민들도 '먹고살게 해달라'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사회에도 세습부자 6행시에 이은 소셜 미디어의 바람이 언젠가는 폭풍으로 변해 '평양의 봄'을 가져올 것이다. 세습왕조의 북한정권도 시나브로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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