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교사들이 이런 사실을 알까?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들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진다는 사실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교사들은 아이들과의 소통, 학부모와의 소통을 기대해도 좋은 교사들이다. 반면 부모들이 왜 기도할까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한 교사다. 이들은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교사, 부모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사들이다.

부모들이 기도하는 목적은 간단하다.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자식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도 아니다. 그저 평균정도의 담임을 만났으면 하는 기도다. 지나치게 독선적이지 않은 교사, 제왕처럼 군림하지 않는 교사, 사심으로 아이들을 보지 않는 교사, 인권을 존중하는 교사 이런 교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다.

# '폭탄교사'는 피하고 싶어

좋은 교사를 만나면 아이들은 잘 성장한다. 그렇지 못한 교사를 만나면 아이들이 자칫 내상(內傷)을 입는다. 한 번의 경우라도 내상을 입으면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평생을 가기도 한다.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들이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들이 좋은 담임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도박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도 통하지만 30%의 기술을 부릴 수도 없다. 오직 복불복(福不福)이다. '담임 선택제'나 '특정담임 기피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이것은 현실이다. 에둘러 특정담임 기피제로 표현했지만 사실 '폭탄교사 기피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의 기도를 멈추게 하기 위한 교사의 노력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담임 선택제나 특정담임 기피제의 공론화를 막기 위해 교사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학생과 함께 동반성장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교사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다. 부모들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불완전하지만 키워가면서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은 아이들과 동반 성장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춘기 시절 아이들과의 파국을 막기 위해 부모가 양보할 것과 요구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인정하게 된다. 동반 성장이란 이런 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그런 것처럼 교사들도 아이들과 한 부분 같이 성장하게 된다는 의미다.

언어폭력과 체벌을 삼가 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모욕감과 모멸감을 주는 경우는 많다. 너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는 등의 절제되지 않은 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교사들도 있다. 이런 언어폭력은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 교사도 학부모 마음 읽어야

군림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역시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의식이 깨어 있지 않다면 군림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림을 권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군림하면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군림하지 않는 것,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의 인권존중에서부터 출발한다. 실제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인격과 인권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다. 그런데도 교육현장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인권을 존중하며 교육이 되겠느냐는 인식이다.

심지어 교육은 인권의 제한을 전제로 하는 것이란 반교육적, 전체주의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신학기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기도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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