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ARKO 전국지역 문화지원협 사무국장

지난해 이맘 때 A도(道)에서 있었던 일.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사업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의 자리였다. 2010년 신규로 추진된 이 사업의 지원 예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배분한 문예진흥기금 1억 원과, A도가 같은 금액으로 매칭한 지방비 1억 원 등 총 2억 원이었다.

국가 예술지원 정책을 따르고 사업성과를 높이기 위해 예술위원회가 특별히 강조하면서 미리 제시한 '선택과 집중' 지원 조건은 시·군에 고루 나눠 줘야 한다는 이유로 무시되었고, 결국 적정 건수의 2배 가까이 선정되었다. 진짜 문제는 지원 조건을 어겼다는 사실보다 선정된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이 사업의 근본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1년 뒤인 지난 달 하순 B도에서 벌어진 일. 역시 조례에 따라 문예진흥위가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대상 사업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회의 자료에는 이미 B도 문화예술과 공무원들이 골라 놓은 지원 예정 대상과 금액이 기재돼 있었고, '안(案)'이라고는 했지만 심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건수 기준으로 신청 사업의 85%가 지원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뭄 때 급수차가 물을 배급하는 장면을 떠올렸다면 필자의 상상력이 너무 비뚤어진 것일까.

이들 지원 심의 회의는 대개 각본이 있는 것처럼 진행된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관련 인사나 단체로부터 제기될 여러 귀찮은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고, 위원으로 참여하는 예술가 입장에서는 적은 금액이라도 아는 이들을 두루 챙겨 줄 수 있는 회의. 공무원들이 더 좋아할 만하지만, 무슨 단체니 협회니 하는 데의 장이나 임원이기도 한 문예진흥위원회의 여러 위원들도 마다할 까닭이 없는 묵인된 절충안이기도 하다. 이들은 형식과 절차 위주의 정치적 관료주의 틀 안에서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안배' 행위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료 행정의 기계적인 효율성과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정치력, 그리고 이에 보조를 맞추는 일부 예술가들의 소심을 확인하게 된다. A도와 B도는 예술위원회의 지역문화예술 지원 사업 종합평가 때 바닥으로부터 아래위를 다투는 사이였고, 이에 두 곳에 대한 금년도 중앙문예진흥기금 인센티브 지원액은 최하였다. 또 결코 우연이랄 수 없는 것은 이들 모두 광역단위 문화재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C문화재단에서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추진할 때 일어난 일. 이 사업의 기본 골격과 운영 원칙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신청한 여러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이 심의에서 무더기로 탈락했다.

나름대로 지역 내 발언권이 있으므로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성명서 채택 등 집단행동을 했던 것. 지역 언론도 처음에는 동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신생 C재단은 굴하지 않고 다시 사업 설명회를 했고, 소신 대로 추가 공모 절차를 밟았다. 지역 언론과 예술계는 그제야 깨우쳤고, 그러한 극단적인 비효율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지역 문화행정과 예술계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물론 성과는 지역 예술가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지난해 지역 문화행정의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들 부정적, 긍정적 사례들은 모두 공공 문화재단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3분의 1쯤은 설명해 준다.

예술가나 예술단체는 자신들이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든가 오랜 관행이 깨지기라도 하면 저항하기 마련이다. 하여 적은 금액이라도 주어지는 지원금은 언제든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다. '선택과 집중'을 그토록 주장하던 예술가나 정치인도 제 자신이 심의위원이나 장이 돼서는 '포괄과 분배'라는 썩 그럴 듯한 수사와 함께 왜곡된 효율성과 정치력을 발휘하려 한다. 문화재단은 이로부터 조금은 더 벗어날 수 있다. 행정 조직이면서도 행정적 관점보다는 문화적, 예술적 관점을 지켜낼 수 있는 조직이 문화재단인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