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진 서강대교수

지난 주말이다. 무급 휴직에 시달리던 노동자 한 명이 세상을 버렸다. 쌍용자동차로부터 복직 약속을 받고 기다리다 힘들고, 우울하고,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작년 4월에 자살을 택한 아내를 따랐고, 떠난 자리엔 두 명의 자식과 4만원의 통장 잔고, 그리고 카드빚 150만원을 남겼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죽음을 맞은 노동자는 모두 14명. 임무창은 복직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삼성반도체에서 직업병으로 잃었던 꽃다운 젊음, 배고픈 예술노동 현장에서 쓰러진 젊은 작가와 가수 이후에 또 다시 맞는 슬픈 죽음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다음날 온 언론은 한 록스타의 위암 사실을 대서특필을 했다. 임무창이란 이름 석자를 어디에도 올리지 않던 언론은 '국민 할매' 김태원이 암에 걸렸고 수술했다며 앞다투어 다루었다. KBS의 인기프로 <남자의 자격>에 출연중인 김태원씨가 그 주인공이었던터라 KBS는 그를 더 비중있게 다루었다. 그의 암 소식에 주변의 동료들은 눈물을 흘렀고, 병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했던 그에겐 찬사가 쏟아졌다. 록스타 김태원의 암 소식은 실망, 당혹, 의지, 희망이 담긴 세상 최고의 인간 이야기로 온 세상에 널리 퍼져갔다.

세상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임무창씨의 이름은 언론 어디에도 차지하지 못했다. 일자리에서 내 몰려 목숨을 잃었지만 암에 걸린 록스타의 백분의 일만큼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내를 잃고, 우울증에 걸린 자식을 남겼지만 언론에서는 김태원의 슬픔에 천분의 일만큼도 넘어서지 못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끼니 걱정을 한 그의 이야기도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고급 내시경을 갖다 댄 김태원의 이야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MBC, SBS 뉴스에서도 그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이름도 몸도 없는 투명인간이었던 셈이다.

임무창씨에 앞선 생떼같은 젊음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은 삼성반도체의 직업병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죽음도 스치듯 예술판의 고충과 함께 잠깐 말로만 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언론이 말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자신들의 생떼같은 죽음을 알릴 길이 없는 사람들을 언론은 유기해버렸다. 그 억울한 죽음 사실을 생매장하고 언론은 록스타 쪽으로 너도나도 발길을 재촉했다. 목숨을 차등짓는 언론의 잔인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들이 억울한 죽음을 생매장해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언론의 무능함이었다.

매정하고, 무능하며, 잔인한 미디어를 읽는 법을 강구해냈다. 그 첫 번째는 묵설법이다. 묵설법으로 신문을, 방송을 읽자. 미디어에 오르지 않은 이야기가 이 세상의 중심 이야기다. 언론의 손에 의해 올려진 이야기는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들이다. 묵설법의 시대가 왔다. 귀를 곧추세우고, 눈을 크게 열어두고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에 온 신경을 다 모아야할 때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 이웃이 겪은 굶주림, 공포, 고통, 죽음을 들을 수가 없다.

묵설법보다 더 좋은 법이 있다. 무시법이다. 아예 대하지 않고 버리는 방법이다. 원래 인기를 먹고 사는 그 쪽이라 묵설법보다는 무시법을 더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이웃이 죽어나가도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쪽엔 무시전술로 나서자. 눈길을 주지 말자. 대신 이웃에 무관심하지 않아야 하는 사회적 책무를 잊은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오랫동안 새겨두고 기억해놓자. 돈이 된다면 연예인의 입원이 이웃의 죽음보다 더 큰 뉴스라고 우기는 그 자들의 뒷 행보를 끈질기게 지켜보는 응시법도 발휘해보자.

사람값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죽음도 차별해나가는 비열하고, 무능하며, 저급한 언론을 묵설법, 무시법, 응시법으로 대하며 '언론의 자격'을 시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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