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복의 교단에서>

겨우내 얼어 있던 강이 시린 가슴을 풀어내고 있다. 산모롱이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한낮의 햇살은 운동장을 돌아 내려 눈이 부시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단양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교육의 희망을 보고,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꿈꾼다. 단양고등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전국적인 명품학교로 내놓을 생각에 마음은 즐겁다.

단양은 물길과 고갯길이 만나는 곳에 자리를 잡아 산수가 수려하고 역사와 문화의 맥이 물결치듯 흘러가는 고장이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고구려와 북쪽으로 세력을 펼치려는 신라가 마주쳐 싸움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온달산성과 적성산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산성인데, 이번에 찾는 곳은 물길과 고갯길이 만나는 천혜의 요새지에 쌓여져 있는 적성이다.

적성으로 가려면 고속도로 단양휴게소 쪽에서 오르는 길도 있지만, 충주를 지나 단양으로 향하는 길을 권하고 싶다. 산은 호수에 모습을 비추어 보다가 강물 속으로 깊숙이 젖어 들었고, 길의 흐름이 머문 곳에는 정감 있는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숨을 나눈다. 산수에 취하고 마을에 취한 나그네의 들뜬 마음은 옛 단양의 마을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마을은 강을 향해 자리 잡고 있는데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단성면사무소가 보이고, 바로 옆에 단양향교가 있다. 추억을 더듬는 마을길이 단양농협 단성지소 앞까지 이어진다. 담장 옆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면 숨 가쁘게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언덕이 끝나면 단양휴게소가 보이고 쪽문이 있는 곳에 자그마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휴게소 뒤쪽에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이 성재산(323m)이고 적성의 성벽이 길게 펼쳐져 있다. 고속도로 쪽에서 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산이지만 삼면이 깊은 강과 내를 두르고 있어 적의 접근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을 성 싶다.

산을 오르다보면 흔적으로 남겨진 고만고만한 성돌 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새롭게 성을 쌓고 단장을 해 박석을 밟고 오르는 운치는 사라졌지만 붉은 기운이 도는 성 돌이 적성의 유래를 이야기해준다.

산성은 신라 진흥왕대인 545∼551년 사이에 신라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축성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안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다. 적성비는 창녕의 진흥왕 순수비보다도 약 10년 전 쯤의 것으로 보고 있는데 비문의 내용을 통해 신라가 이 지역을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적성비는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는 적성을 쌓은 후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바다로 진출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성은 산 정상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동서로 긴 배 모양으로 이어져있고, 한강을 따라 바다까지 내쳐 항해할 듯한 모습이다. 강 쪽의 성벽은 인공을 거의 가하지 않은 돌을 안팎을 포개고 엇물려 쌓은 내외협축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머지 성벽은 대부분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성의 둘레는 923m이다.

성은 경사가 심하지 않고 적절한 높이를 가지고 있어 가볍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적성비가 있는 쪽으로 오르면 성곽을 따라 숲속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길이 나있다.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성 끝에서 부터 죽령 쪽으로 이어지는 잔디밭 길은 대양을 향한 꿈을 이야기하며 물결치듯 웅혼한 소백의 산을 바라 볼 수 있다. 맞잡고 걸어가는 그림자에 사랑이 흐르고 꿈이 피어난다.

/ 이광복 단양고등학교 교장 2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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