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환의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우리는 평소 '색깔'과 '빛깔'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색깔'과 '빛깔'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그 거죽에 나타나는 특유한 빛'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빛이 없는 곳이나 밤에서 '색깔'과 '빛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습니다! 빛이 있어서 색도 있는 것이다. 빛은 태양으로부터 또는 사람이 만들어낸 불빛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물체의 속성과 작용해 각각 특유의 색각(색을 느끼는 감각)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해준다. 결국 빛깔과 색깔은 우리가 빛으로부터 반응하는 하나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같은 의미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반응의 머리에서 몸통까지가 빛깔이요, 몸통에서 꼬리까지가 색깔이니, 이 둘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자연에 가까운 상태를 빛깔이라 하고, 사람이 느끼고 표현하는 상태를 색깔이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연 속에 영글고 있는 잘 익은 과일에 대해 '색깔이 참 좋다.'라는 표현 보다, '빛깔이 참 좋다.'라고 하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색각을 가지고 있을까? 색채의 인류학적 기호설 중에 '색채 기호의 지역설'과 '색채 기호의 민족설'에 의하면 금발색 부류의 백인들은 차가운 한색계통의 색채(청색ㆍ녹색ㆍ하늘색ㆍ자주색ㆍ보라색 등)를 좋아하고, 흑갈색 부류의 황인종이나 흑인종들은 따뜻한 난색계통의 색채(빨간색ㆍ주황색ㆍ노란색 등)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종별 기호 색에는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백인들은 북위 30도 이상에서 많이 살고 있고, 황인종이나 흑인종들은 적도에 인접한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수백만 년 이상 그곳에서 살아오며 빛깔과 색깔을 느끼며 살아왔다. 적도에 인접한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보다 태양에 가깝고 일조량이 많은 환경이라 빛깔을 더욱 또렷하게 느끼며 살아왔으나, 적도에서 멀어지고 극지방에 가까운 지역에서 살아오던 백인들은 일조량이 훨씬 적은 지역에서 살아왔다. 이 같은 연유로 황인종과 흑인종은 풍부한 빛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검은 눈동자가 되었으며, 백인들은 점차 퇴화되어 회색 또는 푸른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백인들은 일조량이 많은 지역에 오면 선글라스 없이는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적도 인접지역의 사람들은 선글라스 없이도 잘만 살아가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조량이 많은 지역의 황인종과 흑인종들은 매우 외향적, 또는 다혈질 성향을 보이고 북위 30도 이상의 지역의 백인들은 내향적, 또는 냉철한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보다 밝은 환경에서는 모든 물체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즉답적 인지와 반응을 보이는 습성이 발달해온 것으로 추정되며, 백인들은 부족한 일조량, 특히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흐린 빛깔과 함께 그 빛깔의 분명한 정체성을 유추할 수밖에…. 즉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습성이 발달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이 비춰주는 빛에 의해 나타나는 빛깔, 그것을 느끼고 반응하는 색깔, 이것은 단순히 태양이 그저 아무렇게나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태동과 성장을 함께 가져다주는,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기관과 인성의 발달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초능력의 모습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글은 색채에 대해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풀어온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빛과 색의 신비롭고 과학적인 사실은 빙산 아래 잠겨있는 거대한 얼음대륙처럼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신비롭고 과학적인 색채의 세계로 좀 더 가까이 가볼 것을 기약해 본다.

/ 청주대 문화산업디자인혁신센터 부센터장

(전 주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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