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집을 한자로 쓰면 '家(가)'로 쓴다. 이 家는 세간살이 가(人+家)의 간체자(簡體字)다. 이 人+家 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이를 분리해 보자. 사람[人], 지붕과 벽면을 뜻하는 면, 돼지(시;豕)가 조합된 상형문자다. 사람이 집안에서 돼지를 기른다는 의미다. 이 돼지는 암퇘지가 아닌 수퇘지라 한다. 시(豕)는 네발과 꼬리를 의미하지만 이 가운데 한 획을 수퇘지의 생식기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붕 아래 돼지를 집어넣었을까?. 집에서 개도, 닭도, 소도 키우는데 말이다.

가축(家畜)으로써 돼지는 개[犬]보다 한 참 뒤인 약 4800년 전이라 한다.

그런데도 돼지가 개를 제키고 '家'자에 사용 된 것에는 나름 대로 이유가 있다. 개는 집 보호와 애완용으로, 소와 말은 농사용이나 이동 수단으로 길렀다. 반해 돼지는 음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데다 신성한 희생물로 쓰였다.

지금도 고사나 제사 때 돼지머리를 사용한다.

인간은 일 년에 최대 30마리까지 낳는 돼지를 통해 인간의 다산을 염원했다.

인류는 언제부턴가 방 아래에 움을 파서 그 곳에서 돼지를 키웠고, 방구석에 구멍을 뚫어 대소변을 보고 음식물 찌꺼기를 버렸다.

이것들이 바로 돼지 먹이였다. 중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이 같은 형태의 집이 발굴되고 있다.

30여년 전만해도 제주도에서는 독특한 돼지사육법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울타리 내 돼지우리 위에 화장실을 만들어 놓고 볼일을 보면 돼지가 그 배설물을 받아먹었다.

이처럼 돼지는 인류와 함께 한 울타리에서 밀접하게 살아왔다.

돼지우리는 공간적 여유가 있었다. 내일 당장 제상에 오를 지라도 땅속에 숨어있는 미생물도 맛있게 잡아먹을 수 있었고 낮잠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요즘 돼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일단 家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람과 집안에서 함께 살지 않는다.

돈사(豚舍)라는 대규모 우리에 산다. 돈사는 대규모이지만 돼지 서식밀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바퀴 돌기조차 힘들다. 그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새끼를 낳는 것이 고작이다.

돈(豚)은 고기[肉]와 돼지[豕]가 조합된 글자다. 돼지가 인간들에게 고기제공을 위해 사육된다는 의미다. 먹는 것도 인간의 배설물이나 음식찌꺼기가 아니다. 돼지를 살찌우기 위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사료다. 돼지는 영양가 풍부한 인간의 똥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이처럼 집에서 떨려난 것도 억울한데 요즘 돼지가 너무 비참하게 됐다. 돼지에 엄청난 재앙이 닥쳤다. 생매장까지 당하는 참상을 겪었다. 원인은 구제역(口蹄疫). 발굽이 두 개로 갈라졌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인간들에게 고기를 제공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돼지는 음성소통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 가스실에서도, 구덩이에서도 돼지의 비명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살아있는 세포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대습격에 무참히 당했다.

근본적으로 돼지의 몰살은 인간 식탐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신성시되고 영리하고 깨끗한 돼지를 집 밖으로 내 몰아 인간 식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돼지가 철저한 먹이사슬의 하부동물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도 돼지와 옛정을 생각해 돼지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를 잃지 않았다고 인간들은 항변한다. 왕릉보다 더 큰 무덤을 만들고 묘비도 잘 세워줬으니까. 그렇다고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돼지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아마도 구천을 맴돌다 인간에게 빙의돼 보복이 우려된다.

이젠 우리는 돼지꿈을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구제역에서 살아남은 돼지들은 '家'에서 '豕'를 빼고 차라리 '犬(견)'을 넣어 '突'(집 '가' 또는 부딪칠 '돌')로 쓰라고 아우성이다. 개가 최초의 가축인데다 지금도 애완용으로 인간과 함께 잘 살고 있으니까. 家畜이 아닌 突畜(가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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