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상언 ARKO 전국지역 문화지원協 사무국장.문화평론가

드디어 충북문화재단이 설립된다.

지난 3월 10일 충북문화예술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김기원 충북도 문화예술과장은 오는 7월 1일 충북문화재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9년 기본계획 수립, 자문위원회 구성 운영, 조례 제정 등 출범을 위한 제반 준비를 마치고도 작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미뤄졌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문화재단이라는 배를 띄우게 된 충북도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토론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필자는 기쁨보다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보았다.

김 과장의 발표는 여러 사람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으며,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진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이사장은 충북도지사, 대표이사는 연임 가능한 무보수 명예직, 직원 3명은 문화예술전문가 중 공채, 사무처장은 도 문화예술과장이 겸직, 충북문화재연구원 1층에 사무실 마련 등 매우 상세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충북문화재단의 비전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충북문화재단은 사업 중심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충북문화재단의 역할이 현 충북도가 하는 문화예술진흥사업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재단은 도의 문예진흥사업을 이관 받게 될 텐데 이것은 도의 사무를 단순하게 대행하는 의미일 수 없다. 직원을 3명으로 하는 초미니 규모의 재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해왔던 지원금을 배분하는 일 말고, 지역과 지역민의 문화화(文化化)에 기여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구의 출범이라는 차원에서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추가로 경상비가 소요되는 재단의 운영 필요성에 대한 부질없는 논쟁과 함께 자리다툼이 노골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처장을 도 문화예술과장이 겸직하겠다는 복안은 어쩌면 이러한 시각의 반영으로 나온 것일 게다. 물론 이해할 수 없다. 문화재단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인 행정의 문화화는 또 어찌 되는 것인가.

충북문화재단은 사업 중심 관점과 기구 신설 차원을 넘어 분명한 문화사적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 거버넌스란 공무원들이 하던 사업 일부를 민간에게 수행하게 한다거나, 새로운 기구에 실무자급 민간 전문가 서넛을 앉힌다고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충북 문화예술인들이 도 문화예술과장의 사무처장 겸직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 개인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여도 이는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팔 길이(Arm's length)가 아닌 손바닥 길이(Palm's length)가 될까 심히 우려된다. 지역과 지역민 그리고 행정의 문화화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검토할 때는 늘 현실성과 타당성을 저울질하기 마련이다. 현실성에 너무 기울면 명 짧은 임시방편이 되고, 타당성에 너무 기울면 아예 시작조차 못한다. 그리하여 모든 정책은 현실성을 좀 더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현실성만 따지면 그것은 아예 정책일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정책학 교과서 첫 장에 있듯이 정책 목표란 '정책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이며 '미래지향적·규범적 성격'을 갖는다. 충북도는 문화재단 설립을 둘러싼 최선의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쩔 수 없다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어설픈 절충은 언제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못하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고개 들어 쳐다보는 높이만큼밖엔 못 오른다. 그 높이가 비전이다. 비전은 현실과 타협하는 마음속 그림이 아니라 모자란 현실을 뚫고 바로 눈앞에 쌓아올리는 산봉우리다. 충북도 그리고 충북문화재단, 좀 달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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