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선의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동물무늬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생물 현상의 놀라운 규칙성이라든지 과학 선구자들의 행적 등은 어느 드라마보다 흡인력 있어 보였다.

호랑이, 얼룩말 등은 줄무늬이고, 표범, 치타 등은 점무늬다. 그리고 사자, 인간 등은 무늬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같은 포유동물이면서 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많은 과학자가 궁금히 여겨왔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한 학자가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는 과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닌 수학자 '튜링'이었다.

튜링은 암호해독을 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이고, 세계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들었으며, 후에 애플사의 사과모양 로고 탄생의 사연이 된 인물(그의 최후는 청산가리 독이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묘사됨)이라고 한다.

튜링은 동물의 무늬를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그 개요는 동물의 몸속에 있는 멜라닌 화학 물질과 그것을 확산하는 물질, 억제하는 물질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으며, 그것을 수학 공식으로까지 만들어 냈다고 한다. (도표 참조)



그리고 얼마 전 부부의 이혼 예측 공식을 발표하기도 했던 또 다른 수학자 제임스 머레이는 튜링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동물이 세상 밖으로 태어나기 전의 태아 크기에 따라 무늬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어린 딸이 "아빠, 왜 얼룩말 무늬와 치타의 무늬가 달라요?" 하는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이 궁하자 스스로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는데, 그때 튜링의 선행 연구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머레이 교수 주장에 따르면 동물의 무늬는 반응이 일어나는 시점의 태아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①동물의 임신 기간 초반, 태아의 크기가 매우 작을 때 멜라닌, 확산제, 억제제 등의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표피에는 무늬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 퓨마, 코끼리)

② 태아가 조금 자랐을 때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이때부터는 무늬가 생기는데, 상대적으로 태아가 작을 때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 줄무늬가 된다고 한다. (얼룩말, 호랑이)

(태아가 작으면 반응-확산 과정에 의해 생기는 원형 무늬 전체가 태아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일부만 들어가기 때문)

③ 태아가 더 커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점무늬가 된다고 한다. (표범, 재규어)

(표범이 몸에는 점무늬, 꼬리에는 줄무늬를 가진 것도 같은 이유인데, 점무늬를 가진 동물은 태아가 어느 정도 자란 뒤에 무늬를 형성하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꼬리 부분은 태아만큼 크면 똑같이 점무늬가 생기겠지만, 보통은 태아보다 작기 때문에 원형 무늬의 일부인 줄무늬가 생긴다고 한다.)

동물무늬의 변화무쌍함에 이런 규칙이 숨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생물의 자연 현상을 단순한 공식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한 두 수학자의 통찰력이 대단해 보인다.

과학은 과학자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미래과학연구원 운영위원 (목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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