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일본 최고의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 학생이 마쓰시타 회사 입사 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그러나 전산직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수석합격자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누락됐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수치심과 분노에 괴로워하다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다음 날, 학생의 집에는 한 장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전산 처리의 실수로 수석합격자의 명단이 누락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학생은 싸늘한 시체로 변한 뒤였다. 회사 측 관계자들과 주변사람들 모두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마쓰시다 그룹 고노스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고노스케 회장은 그 정도의 시련도 이겨내지 못하는 학생이 회사에 입사하여 요직에 있을 때에 좌절을 겪었다면 충동적이고 비극적인 방법으로 일처리를 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회사에 끼치는 손실은 막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올 들어 두 번째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한두 명이 아니다.통계에 따르면 34분당 한명 꼴로 자살자가 나온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은 이미 2003년부터 헝가리, 일본을 제치고 OECD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러니 카이스트 학생의 두 번째 자살도 사실 그리 특별할 것은 못된다. 그럼에도 언론이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는 미래사회에서의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이스트에는 전교에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정도의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입학한다.

연초에 목숨을 끊은 학생도 로봇영재로 언론의 각광을 받았던 최초의 실업계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자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두 번째로 자살한 학생 역시 경찰은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카이스트에는 두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 일반고와 과학고로 대변되는 특목고 출신들이다. 이중 특목고 출신은 대학교 내용으로 시험을 보며, 일반고는 내신과 면접으로 뽑는다. 때문에 1학년 시절에는 과학고가 앞서지만 일반고 학생들도 2학년 때부터는 적응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의 편차와 성적을 토대로 등록금을 차등적으로 내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재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는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한다.

반면에 특목고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1년만 버티면 일반고 세상이 펼쳐진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나온 명언이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극복 할 건 극복하자.'는 논리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이를 느낀다. 빈부의 차이, 실력의 차이, 학력의 차이, 머리의 차이 등,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도 쉽진 않다.

인생을 살다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이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 점수를 줄 수 없는 선택이 자살이다.

힘들었던 시절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추억은 이를 극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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