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펴낸 이향란 시인

시인 이향란씨가 세번째 시집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도서출판 지혜)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는 '당신의 화법(話法)', '겹, 겹', '기우는 것들에 대한 단상', '양파의 매력' 등 시 56편을 담았다.

삶이란 어떻게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승작용을 하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미 시든 적이 있고 추락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다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다. 이런 심상이 시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김상민 시인은 "이향란 시인은 비록 그 대상이 길에 의해 버림받고 새조차 떠난 침엽수림일지라도 끊임없이 뿜어져나오는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자신을, 주변을 정직하게 관찰하고 아프게 응시한다. 무엇으로도 해부되지 않는 시인의 고집으로 꼿꼿이 날을 세워, 세상 어느 누구의 귀에도 닿아본 적 없는 맨살로 모두에게 묻는다"고 말했다. 이승희 시인도 "그녀의 시세계를 걷는 일은 내내 쓸쓸한 이면 같지만 그 이면의 내력을 더듬어 읽다 보면 공중에서 꽃피는 마음의 공력이 얼마나 침착하고 단단한지를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이향란씨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2002년 시집 '안개 詩'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는 '슬픔의 속도' 등이 있다. / 김미정


시간이라는 이불

춥다고 끌어당기지 않아도 되며, 얼룩진 사랑을 지우려 세탁기에 넣고 돌리지 않아도 되며, 쓸쓸한 열기가 어느 날 문득 이불 끝자락의 실밥을 풀고 나와도 다시 꿰매지 않아도 되며, 젖은 꿈을 햇빛에 몰래 말리지 않아도 되며, 사라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뒤척이지 않아도 되며,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 때문에 끙끙 앓지 않아도 되며, 그리움의 허기를 위해 야식을 들지 않아도, 빨리 잊는 법을 검색어로 치지 않아도, 떠난 사랑을 희석하여 술을 먹지 않아도, 모든 계절을 가을로 채색하지 않아도,

누군가 버린 평범한 일상을 복습하면서 / 그 맛에 혀를 쩍쩍 다시면서 그렇게 살다가 / 반짝이는 최후의 눈물을 / 가장 슬픈 문장의 방점으로 굴려 / 마음 깊숙이 들여놓으면 될 것을 / 세상 모든 것 고요히 흘러들어 잠들 수 있는 / 시간이라는 부드럽고 따스한 이불 한 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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