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재식 목사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력에 나타난 진리를 믿고 신앙인 삶에 항성(恒星)같은 부동의 사랑을 사모하게 하여 깨달음의 신비를 체험케 한다. 흰색과 빨강색과 보라색, 초록색으로 순환되고 있는 교회력에 절기마다 내포하는 고운 빛깔들이 있는데 고난주간동안 슬픔과 통회를 상징하며 표하는 보라색 예전을 교회마다 사용하며 신앙의 성찰로 신앙인의 성숙을 이어간 고난주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뇌어진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계절이면 보랏빛 수수 꽃다리의 꽃들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수수꽃다리 꽃 들이 서서히 피며, 보라 꽃 잔디는 활짝 피고, 박태기나무의 자색빛 꽃들도 올망졸망 피어나기를 시작한다.

향기가 매혹적인 종모양의 수수꽃다리의 꽃잎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깨우치며 고난의 의미를 알리는 세상의 향기 되신 예수님을, 박태기나무의 자색빛에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무리를 지어 아름답게 피어난 보라 꽃 잔디의 보랏빛에서 공동체에 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떠올려 보았다. 활짝 핀 다양한 꽃들은 볼 수 없지만 곧 만개될 꽃들을 소망 하게 하여 꿈이 있어 좋은 어린이들처럼 미소가 머금어지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고난주간 계절엔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 인류애를 묵상하고 고통을 내 속에 부은바 되는 체험을 위해 고뇌어린 그늘진 꽃들이 잔잔히 피어올랐었고, 고난묵상의 체득과정에 순수함의 열매는 맺혀 지는데 다가온 부활의 계절에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기다렸던 시기인 고난주간이었기에 더 옹골차게 부활의 첫 열매되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었다. 순결, 완전,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예전을 사용하는 부활절에 부활의 축복을 축하라도 하듯이 먼 산 발치로 희미하게 보이는 벚꽃군락의 말그스름함이 보랏빛 계절에 희망으로 넘쳐났던 기억이 남아있다. 뒷산에 연분홍 진달래는 그늘진 곳에선 보랏빛을 띠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나타난 고뇌의 담금질이 회상 된다. 평안으로 오셔서 스스로 만드신 그늘로 초췌함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에서처럼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쁜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싯구처럼 인류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밟힘 바 되었고, 우리 또한 예수님을 즈려 밟으며,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되돌아보고, 통회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떠나보내는 것도, 지워버리는 것도 아니라 차분히 생생하게 예수님의 고난의 숭고함을 주님과 자신, 타인이 고난의 공동체를 이루고 고난의 예수님과 고난영성을 화두로 삼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사회력의 AD와 BC의 기준이 되어 세상 안에 나타나 있으며, 예수님의 생애는 복음의 핵심이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공통분모삼아 이 땅의 또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들고 키우는 매뉴얼이 되어 교회 안에서 상생하고 있다. 그늘 진 곳의 연분홍 고운 빛의 진달래꽃이 슬픔과 통회를 표하는 보랏빛을 띠는 것은 만물이 약동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계절에 교회는 통회와 자복과 묵상의 시절을 지내면서 그늘진 만물의 모습이 다가와 내 안에 새로운 재창조를 경험할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만물을 재창조하시는 계절에 주님께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드리며 거듭나는 통회는 승화 넘치는 만물의 기지개와 발맞추어 순수한 영혼의 새싹들이 돋아나게 한다.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에 슬픔이 새로운 소망을 만들어내고, 통회는 오랜 투덜거림을 물러서게 하니 그늘진 희생은 인류를 살린 동력 이었고, 예수님의 고난과 오늘을 사는 작은 예수들의 고난은 날마다 새 보랏빛 꽃들을 피울 것인데 지구상에 발견되지 않은 대륙은 없고, 시공간과 에너지가 우주에 모두 포함되어지지만 고난의 대륙은 발견되어지고, 우주 안에 넘치는 에너지도 주님 안에 포함되어 날마다 소우주의 신비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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