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로 결론 난 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는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시절이던 2005년 과학·인문·예술계 학자 그룹인 '랑콩트르(Rencontre, 만남)'에서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 연구하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해 논의가 시작됐다.

본격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6년 4월 '은하수 프로젝트(Milkyway Project)'를 만들면서 과학벨트를 포함시키면서부터다.

이것이 2007년 9월 한나라당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분과위원회에서 과학기술분야 대표공약으로 '국제과학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그해 12월에는 50쪽 짜리 한나라당 대선후보공약집인 '일류국가 희망공동체 대한민국'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현재의 이름이 등장하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대선후보시절 충청권 유세에서 과학벨트 충청권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게 된다. 이 대통령은 당시 대덕연구개발특구, 행정중심복합도시, 오창·오송단지를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묶어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었다.

민 이사장이 언급한 이후 6년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이후 5년여 만에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셈이다.

정부가 과학벨트를 추진하는 이유는 기초과학연구 역량에 기반을 둔 창조형 연구개발(R&D)전략으로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선도한 선진국 기술 모방형 전략은 한계에 직면했다는 자성이 근간이 됐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20세기 초부터 종합 기초과학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기초연구를 중점 지원하고 있다. 1917년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세운 일본은 그동안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9년 현재 3100여 명의 연구원이 산하 10개 연구소(해외 5곳 포함)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협회(MPG)도 1948년 설립 이후 노벨상 수상자만 19명을 배출했다. 2008년 기준 1만3600여 명이 80개 연구소(해외 4곳 포함)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세계 최고수준의 기초연구 환경 구축을 위한 전담연구기관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국내 기초연구의 대부분은 대학 R&D과제로 지원되어 단일 주제에 대한 지속적 몰입과 연구자원의 축적이 미흡한 상황이다. 실제 정부 기초연구 사업 연구책임자의 77%가 대학 교수(2009년 기준)들이다. 전문 연구 인력이 태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깊어지는 데다 이공계 고급 일자리마저 부족해 그나마 있는 우수 인력마저 해외로 빠져나가 한국국적 해외 학위 취득자의 귀국포기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립과학재단(NSF)이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중 미국 잔류의사를 표시한 경우가 1996~1999년 50%에서 2004~2007년에는 69.2%로 20% 가까이 늘었다.

이번에 과학벨트를 구축해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을 구축하게 되면 이런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뿐만 아니라 해외 석학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유인효과도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연구를 통해 창조적 지식과 미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차세대 연구리더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기초과학 연구거점과 젊은 연구자들의 안정적 연구를 위한 전문 기관으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주요 연구 영역은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수준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순수 기초연구단계의 장기 중대형·융합 연구, 대형 장비기반 연구를 하게 된다.

특히 연구테마 중심 보다는 우수한 과학자를 연구단장으로 선정하는 '사람 중심' 지원체계를 확립해 운영된다. 원장이나 연구단장 등 주요 직책은 지명과 공모방식을 병행한다.

또 국내외 우수 인력 흡수를 위해 개방형 조직으로 운영된다. 전 세계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우수 인력을 유치해 세계적 연구거점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RIKEN과 MPI의 해외과학자 비중은 각각 26%(2008년 기준), 31.7%(2010년 기준)다.

기초연구원은 본원과 캠퍼스, 외부 연구단(국내외 대학‧연구기관에 설치)으로 구성된다. 본원은 운영을 총괄(캠퍼스와 외부 연구단 포함)하고 순수 기초과학 연구와 중이온가속기 관련 연구를 위주로 담당하게 된다.

캠퍼스는 과학기술 특화대학과 연구개발(R&D)특구에 연구단을 집적한 3개 캠퍼스(KAIST연합, D·U·P(대구·울산·포항)연합, GIST)를 설치하게 된다. KAIST연합은 KAIST와 대덕의 출연(연)이, D·U·P연합은 3개 과학기술 특화대학(DGIST(대구), UNIST(울산), POSTECH(포항))이 연합·운영한다.

구성은 단장, 연구원 및 지원인력으로 꾸려지며 연구주제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조직된다. 평균규모는 연구·지원인력 55명, 연간 130억원(간접비 포함)이 지원된다. 연구단장에게 인력·예산·연구내용 등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된다.

이를 토대로 보면 기초연구원 전체 규모는 상근인력 총 3000명, 연간 예산 6500억원(2017년 기준) 수준이다. 앞으로 2017년까지 연구단 50개를 단계적으로 설치하고, 2012년에는 25개 내외 규모로 착수한다. 130억원의 지원비에는 대형시설·장비, 해외연구기관 유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추가 지원된다.

한편 정부는 과학벨트 투자 규모를 7년간 5조2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우선 2012년에는 중이온가속기설계와 연구단(25개 내외) 지원 등 기초연구비 위주로 41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중이온가속기는 상세설계를 포함 2016년 구축 때까지 4600억원이 지원된다.

과학벨트 거점지구 개발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다. 정부는 올해 말 과학벨트 구체안이 나오면 토지 보상 등을 거쳐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가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대전 대덕특구를 선정했지만, 남은 과제도 만만찮다. '단군 이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이자 이명박 정부 후반기 최대 국책사업이지만 그간 추진과정에서 온갖 잡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백미는 16일로 예정된 거점지구 최종 결과를 14일 여당 고위층이 일부 언론에 흘린 것이다. 이 때문에 16일 과학벨트위의 발표는 알맹이 빠진 발표에 그쳤다. 거점지구로 선정된 대덕특구를 위해 다른 지역들이 들러리를 선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 이로 인해 영남권은 물론 호남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다.

최근 LH 경남 진주 일괄이전 사태에서 보듯 MB정부의 후반기 중점 사업들이 임기 말 레임덕 현상과 맞물리면서 지역갈등을 부르고 여야를 막론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국정 운영 누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만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 세종시로 예정된 과학벨트를 무리수까지 둬가며 영남으로 틀려던 생각이 자충수가 되어 임기 말 현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심을 가라앉히고 갈라진 정국을 봉합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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