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재식 목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신학을 배우던 신학생시절 푸르름이 짙어가던 5월의 어느 날 대학학우는 당시 극단 마당에서 운영하던 '마당 세실극장'에서 공연한다면서 계절에 잘 어울리는 녹색바탕에 멋진 글씨체로 이루어진 공연표 한 장을 기쁘게 건네주던 학우가 올 5월엔 많이 생각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힘겨운 마음으로 사과하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학우의 정성에 보답하지 못한 것, 유명건축가의 설계로 세워졌고, 한국 연극의 거점 역할을 해왔던 곳에서 펼쳐진 멋진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한구석에서 이루어지는 한갓진 파닥거림도 다루기가 쉽지 않으니 넉넉한 5월에 그 시절이 꽤나 그리운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연극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작은 공연을 해보기도 했으니 그 경험은 마치 범고래들이 서로 간지럼 태우기 운동을 통해 무척 즐거워하듯이 직접 쓴 시나리오가 무대에 올려진 것이 마치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호탕한 기쁨이 올라온다. '교육예술'을 주장하며 감정적 경험과 창의성 넘치는 예술가적 자세를 강조하며 예술적으로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으며, 스피치도 아트스피치를 강조하며 삶의 경험과 지식, 지혜가 담긴 콘텐츠를 절대적으로 중요시 여긴다.

개인의 삶도 예술적인 삶을 추구하며, 진솔하게 살아간다면 조금 더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지 안을까?

최근에 접한 가곡 때문에 며칠의 속소그레함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손가락악보를 이용하여 발성연습도 해보고, 시김새인 요성, 퇴성, 전성, 추성을 내다보면 시원하기 까지 하다. 그 풍요로움은 여유를 가져다주며, 때로는 피로가 풀리기도 한다.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보람있는 것이고, 치열하게 살더라도 예술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다면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지는 안을 런지... 우리가 땅을 딛고 사는 세상에도 바라보는 하늘에도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 합니다.

생물과 무생물로 나뉘어진 세상에 부여되어 가직된 고유의 권한을 가지고 성실하게 극본을 인지하며 극본에 충실하여 역량 껏 움직인다면 배우의 사명은 온전히 감당되어지게 된다. 성경극장 안에도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 한다. 엑스트라, 조연, 주연이 등장하는데 성경의 배우와 독자가 주객이 전도가 되는 경우와 동일시하는 경우, 상반된 경우가 나타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 주연이요, 동일시하면 조연이요, 상반되면 엑스트라가 되게 된다. 매일 만나는 성경의 인물들이 나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지는 안으며, 항상 고정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탈바꿈한 만큼 그들은 매일 다르게 자신에게 나타난다. 아니, 그려지는 것이다.

그려진 것은 꿈과 비전으로 건축하여 현실세계에 고정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많은 성격의 인물들, 추악하여 말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 권장하고 싶은 사실들, 다양한 직업과 문서들과 만난다. 매일 성경극장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보고, 자신의 모습을 비취어보고, 문서들을 인용한다. 성경극장의 많은 지점의 설립은 바로 찾아보고 비취어진 모습, 인용된 문서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실천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가정극장에서는 가장과 아내, 아이들의 배역이 정해져 있다. 가장은 가정의 대표로 임명되어 관리자로 서게 되는데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가정을 잘 이끌어가며 아내와 아이들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는 것이 가정극장의 성공의 핵심요소가 된다. 가족 간의 관계의 중립을 지키며 조정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 하느냐에 따라서 흥행이 결정된다.

개인극장에서는 비체계에서 체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불합리적인 요소를 찾고 합리적인 요소로 변화시키고자하는 애씀이 개인극장의 도산을 막는 길이다. 인생길에서 승리하며 사는 법은 지키는 것과 방어하는 것을 배우고, 미는 힘의 속도와 끄는 각도의 조절로 좋은극장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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