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재식 저산교회 목사

어학원을 가고 오는 도중에 청주 도심의 새로운 노선을 가로지르는 버스 안에서 학창시절의 청주와 차창 밖 청주의 대비(對比)된 뚜렷한 모습이 지나간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본 기억이 오래되어 새로운 버스노선의 새로움과 마주치게 되었다. 내 삶의 노선에서 잘 뛰며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나온 것도 그쯤이다.

요즈음 바깥일 때문에 청주 찾는 일이 잦아지면서 여유 있는 청주를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던 터에 지인들께서 저녁식사 자리에 우리 가족을 초대하여 식사장소로 갔던 곳이 몇 주 전 선배목사님과 차 한 잔 나누던 커피숍 옆이어서 향긋한 커피향이 시각의 조각배에 후각이 감도는 돛을 올려 저녁나절의 소슬한 바람을 안고 애찬(agape feast)의 공간 안으로 나를 휘감아가기에 냉연한 자성(自省)과 정갈한 애찬일 것이라는 확신이 올라왔다. 알토란(土卵)처럼 누리는 여정이 도시의 향기로 다가와 애틋한 사랑을 만들었다는 순수함이 가득한 자리여서 더욱 기품 있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트렌드와 친숙해야 세상을 잘 읽을 수가 있고 때로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 트렌드는 근대사회와 더불어 나타나게 됐는데 광범위한 삶의 전 부분에서 존재하며 나타나는 트렌드는 인류의 본능적인 요소가 커다란 사랑의 장으로 기화(氣化)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 사랑이 승화로 인연하는 사랑이 되어 많은 사람들 곁에 남아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바랄 것이 없다. 최근에 참여한 콜로키움(Colloquium)에서 발제자는 강의도중 부모님 이야기에 목이 메어 강의는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고 결국에는 물을 마시는 일을 직접 목도하면서 열린 공간 안에서의 가족사랑(Storge)을 보았다.

또한 젊은이들의 밴드공연으로 맞딱드리는 우정과 열정 속에 묻어나는 우정(Philia)이 나 자신도 녹여버릴 것 같은 감동이 찾아오기도 했고 며칠 전 태국의 국제학교 음악교사로 떠난 지인의 송별모임 때 닭백숙으로 식사하면서 닭고기를 거듭 권했다. 태국에서 토종닭을 먹을 기회가 없는 것을 알기에 많이 먹고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권유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언니는 자주 방문 할 것이라는 언급이 울컥할 만큼의 사랑 넘치는 또 다른 스톨게(Storge)를 경험한다. 돌아오는 길에 동료는 태국으로 떠나는 동료를 위해 야구경기를 오늘 함께 관전 할 것이라면서 동료애 필리아는 시(時)가 매겨지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거침없는 자신의 의견 제시의 장에서 잊혀 지지 않는 스톨게의 사랑이 다가오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배움이 되어 피드백 되는 그 사랑이 사회의 아름다운 기본으로 남는다.

벤드기계음의 연주와 기계음과 교감하여 사람에게 부여된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들려진 필리아(Philia) 때문에 사람들은 함께 사는 아름다운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태국으로 떠나보내는 언니, 지인, 동료의 모임에서 어우러지는 스톨게와 필리아의 공존이 사랑의 그릇에 담겨진 롤 모델로 느껴진다. 여전히 전 연령대를 통틀어서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어려워한다고 하니 갑갑한 마음이 든다. 나의 마음과 의지와 정성을 묶은 사랑을 고백해보자! 축복 있는 사랑의 수혜자는 예측 가능한 대상을 발견하기에 평안과 안정감을 느끼는 법이다.

미국에서 엄격히 적용하는 선한 사마리안 법(Good Samaritan Law)은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30절-37절에서 유래 된 법인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체벌하는 법인데 더불어 살면서 사랑의 가치를 높이는데 효과적인 법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기억으로 기억하는 의식으로만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속에 입력된 것을 몸은 기억하고 있기에 사랑을 받고 나누고 누릴 수 있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의식과 무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깻바람 나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과 차 한잔 나누고 싶다. / 저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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