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장기근속 환경미화원 최시온씨 뺑소니에 '의식 없어'

"그이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책임감은 강한 사람이에요. 16년 동안 그 힘든 청소 일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지난달 27일 새벽 3시. 청주시 상당구청 소속의 환경미화원 최시온(52)씨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청소 일을 나섰다.

전날 내린 비로 거리가 유난히 지저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청주시에서 장기 근속자에게 평생 한번 주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최씨는 그동안 자신의 구역을 맡아 청소해준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이 청소를 시작한 최씨는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한 주유소 앞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최씨를 병원으로 옮기지도 않은 채 유유히 사라졌고, 짙게 깔린 어둠 속에 최씨는 수 십분 동안 방치됐다가 취객으로 오인한 한 시민의 신고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을 준비하던 최씨의 아내 심순희(45)씨는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 한통을 받았다.

수화기 넘어 들려온 남편의 사고 소식.

심씨는 "지난해 12월에도 남편이 청소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한 번 있었다"며 "다행히 그때는 팔 만 부러져서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큰 사고가 아니길 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응급실로 들어선 심씨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든든하게 옆에서 가족을 챙기던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아무런 의식없이 머리에 붕대를 감싸고 있었다.

심씨는 "최근 남편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며 "며느리도 보고 손주 녀석 재롱도 보면서 우리 가족에 웃음꽃이 질 날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이런 일이 터지니까 한편으로는 담담하기도 하고 허탈하다"며 울먹였다.

긴박했던 응급실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담당 의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모르고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정신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니 그나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다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심씨는 말했다.

심씨는 "앞으로 장애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크게 상심할 거예요"라며 "무엇보다 가족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불만 없이 시동생 학비며 우리 아들 결혼 비용, 딸 아이 대학 공부까지 끝마친 든든한 가장이었죠"라고 말했다.

얼마 전 병원에 한범덕 청주시장이 격려차 다녀갔다. 피해 가족들을 위로하고 산재처리를 통해 치료비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말도 전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사흘이나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심씨에게 보상이나 격려는 중요하지 않았다.

심씨는 "지금은 남편이 건강하게 의식을 찾는게 중요하다"며 "그렇게 예뻐한 손주가 옆에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남편 의식이 돌아오면 가족들과 함께 도란도란 다시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박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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