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출간... 5년 만에 13번째 시집 발표

내 나이를 하루의 시간에 견주면 몇 시쯤에 와있을까.

청주 출신 도종환(57) 시인은 신작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8천원)에서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대답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뜨겁고 치열했던 정오를 지나 어두워지기 전 황홀한 노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도종환 시인이 5년만에 꺼내놓은 시집이자 그의 열세번째 시집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지난 시간 걸어온 삶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명상하고 정리한다.

도종환 시인은 "내 생의 열두시 무렵은 치열했으나 그 뒤편은 지치고 병들고 적막한 시간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머지않아 어둠이 찾아올 것이지만 의기소침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아직도 몇 시간이 남아있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인생의 가장 치열했던 정오를 지날 때쯤 "이십대 중반을 갓 넘긴 나이여서 나도 서툴기 짝이 없었으나 세상은 툭하면 발길로 나를 걷어차곤 했다('인포리'중에서)"고 고백했고, 때로 힘이 들때는 "나무야 네게 기댄다.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기댈 사람 없었다('나무에 기대어' 중에서)"고 회고했으며, 인생의 오후 세시를 넘어서서는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은은함에 대하여' 중에서)" 좋겠다고 소망했다.

배창환 시인은 "도종환은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자신과 시대의 고통과 환희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녹여서 눈물처럼 깨끗하게 정제된 빛나는 언어로 노래해온 시인으로, 겸손하면서도 온유하고 불의 앞에서는 온몸으로 분노할 줄 아는 '청년' 시인 도종환이 걸어온 순탄치 않았던 역정으로 인해 그의 시에는 아름다움에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을 향한 그의 사랑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 과정이 그에게는 험난한 구도(求道)의 길이었다"고 평가했다.

다섯시 이후 도종환의 시가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섯시 이후 자정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은 청주에서 태어나 현재 청주와 보은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집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당신',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의 시집과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지난 5월 '졸업식노래' 등을 작곡한 옥천출신 정순철 평전을 출간했으며 최근 '접시꽃 당신' 출간 25주년을 기념해 특별한정판을 찍었다.

/ 김미정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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