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살다보면 때로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지친 가슴을 기대고 위로 받고 싶은 날들이 있다. 가끔은 부모에게, 혹은 또 다른 가족에게 위로 받고 힘을 얻기도 하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만나 잠시 지친 삶을 나누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느 날 그렇게 답답한 마음과 울적한 기분을 털어낼 누군가를 찾아 휴대 전화에 저장된 수 백 명의 이름을 훝어 내려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돌아섰을 때의 기분은 더욱 착잡했었다.

미리 약속된 만남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런 나의 요청에 다른 일정을 모두 미룬 채 달려와 줄 '한 사람'. 마음 속에 감춰 두었던 비밀스런 이야기도 속 시원히 털어 놓고 후회하지 않을 '한 사람'. 주책스런 눈물이 철철 흘러 넘쳐도 부끄럽지 않을 '한 사람'. 내가 털어 놓은 가슴 속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될 '한 사람'. 내가 했던 말들이 다시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한 사람'. 다소 교양 없고 거친 말들로 가장 밑 바닥 이야기까지도 숨김없이 털어 내고 시원하게 돌아설 수 있는 '한 사람'.

그런 '한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 사건이었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내가 잘못 살아 온 것일까?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 왔을까?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온갖 상념들이 밀려들면서 '결국 사람은 혼자인 것인가?'하는 외로움마저 가슴을 시리게 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왜 살고 있는가?'하는 철학적 질문을 굳이 던지지 않더라도 살아온 날들에 대한, 그리고 나의 관계 맺음에 대한 생각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결국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내게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혹시 거절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에게도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마음이 끌렸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더라면 답답한 마음 한 조각을 하소연하고 위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손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채 혼자 결정내린 것이다.

두 번째, 내 마음의 빗장을 스스로 채우고 있었다. 때문에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될 거야, 저 사람은 저래서 힘들 거야' 단정 지으며 관계의 한계를 미리 설정해 두고, 내가 다가서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내게 다가설 수도 없게 만들고 있었다.

세 번째,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그런 '한 사람'이 되어 주지 못했다. 누군가 마음이 힘겨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내게 기대어 쉬어 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두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가 나에게 '한 사람'이 되어 달라고 보내는 메시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한탄하기 전에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먼저 살펴보았더라면 더 속 깊은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찾았을 것이고, 힘겨운 마음도, 골치 아픈 고민 덩어리도, 아픈 가슴 속 상처도 서로 치유하고 공유하며 다독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다가서서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 주지 않으면 우리 인생에 '한 사람'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롭다고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관찰해보자. 혹여 용기가 없어 혼자서만 끙끙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한걸음에 먼저 다가가 따뜻하게 손잡고 안아 주자. 그저 그렇게 진심으로 다가서기만 해주어도 그는 위로받고 새 힘을 얻어 오히려 당신이 지치고 낙심해 힘겨워 할 때 당신의 '한 사람'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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