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문상오 소설가

58년 개띠. 전후세대의 상징이자 베이비부머의 대표주자. 4말5초로 불리는, 가장 흔하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사회의 기둥뿌리. 그 기둥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이들 남성의 자살률이 20년 전보다 4배나 늘어났고 이혼율과 이직율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단다. 고단하고 힘든 삶이 그들을 이런 곤궁으로 몰아넣었을 테지만 아쉽다 못해 안쓰러운 마음 가눌 길이 없다. 나 역시 58년 개띠의 한 사람이고 보니 남의일 같지 않음을 어쩌랴!

그들이 누구인가.

어릴 때는 삐삐기며 모매며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며, 개구리 뒷다리도 좋고 꾸구리 알도 마다하지 않던, 그야말로 초근목피의 시절을 보냈다. 이 나라 국민이면 최소한 여기까지는 졸업해야 된다고 정해놓은 국민학교, 그 국민학교에서조차 월사금 몇 푼 낼 형편이 못돼 학교 빼먹기를, 붕어 이빨 빠지듯하던 빈곤의 세대. 호박꽃에 잡아넣은 반딧불이로 길마중 하던 암흑의 세대. 누야는 봉제공장으로, 형아는 탄광 선산부로 갈라져야 했던 이산의 세대. 대학교 들어가는 데도 예비고사를 치러야 했고, 군대 가서야 겨우 북한 땅도 남한 땅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멸공통일의 세대. 모든 언로와 사상이 통제된 개발독재 아래서 장발과 청바지, 미니스커트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 반항의 세대. 똑같은 투쟁전선에서 누구는 민주투사로, 또 누구는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탄받아야 했던 혼돈의 세대.

서럽고 고달팠던 세월이 어디 이뿐이랴.

절망과 광기와 함성이 뒤죽박죽이던, 멀리는 이육사의 광야이며, 김수영의 풀밭이자 최인훈의 광장이기도 한, 저 광화문 한복판에서 자유와 평등을 목 놓아 부르짖던 그들. 그래서 그들에겐 자유의지와 평등의식이 남달리 강하다. 그들이 있는 곳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고 소용돌이의 정점이 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상명하복이 가장 엄하다는 사법부에서조차 그들을 일러'사법부의 이단아'라고까지 혀를 내두르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었다. 산업 전선에서, 상아탑에서, 아니면 서대문 어디 영어의 몸으로. 그런 그들에게도 시간은 흘렀고 가정이란 것이 생겼다.

어렵사리 잡은 직장에서 그야말로'개 발에 땀나듯'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좀 먹고 살만하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IMF란 것이 쓰나미처럼 덮쳐왔고, 다시 허허 벌판을 헤매야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그들이 배우지 않은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절망'이란 말이었다.

고루하기 짝이 없는 386세대와, 한결 빡빡할 수밖에 없는 N세대 틈바구니에서, 화합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이 사회를 이만큼 이끌어 온 것 또한 그들이다.

어딘지 촌스럽고 흙냄새 풀풀 풍기는, 저 헐렁하고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한 58년 개띠들. 그들은 이 땅의'에누리 있는'마지막 세대이다.

장터바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법이 없고, 택시를 타면 잔돈 몇 푼 정도는 덤으로 주기 예사다. 풀빵을 사도 낱개로는 사지 않고, 소주 한잔을 마시고도'돌아가는 삼각지'를 젓가락 장단으로 두들길 줄 아는 풍류아들이다.

평생을 없이 살았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그들. 그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니. 거리로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과 영원히 등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니!

아니 될 말이다. 그들에게 다시 웃음을 주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이 땅의 아버지이자 형님이며, 우리 모두의 벗이자 고락을 함께 할 길동무인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있으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58년 개띠들이여,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라! 당신들의 희망이 이 땅의 희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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