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회 소방의 날] 작년말 대형화재 부상 '박석기 소방교'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잠을 이룰수가 없어요.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저녁 7시30분. 청주동부소방서로 긴급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의 한 빌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당시 대기실에 있던 박석기(32) 소방교는 황급히 소방차에 몸을 실었다.

화재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불길은 1층에서 2층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는 건물 4층 좌측 외벽에 난 작은 창문 사이로 구조를 요청하는 구조자의 손을 발견하고는 동료들과 함께 산소호흡기를 메고 4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4층에 있던 4가구의 현관문이 모두 잠겨 있어 구조자의 위치는 물론 생사파악도 어려웠다.

게다가 박 소방교의 산소호흡기 산소도 5분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아 바로 구출하지 않으면 박 소방교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박 소방교는 장비를 이용해 서둘러 문을 열고는 화장실에 있던 구조자를 발견했지만 구조자의 체격이 워낙 큰 탓에 계단까지 3m를 끌고 나오는데만 수 분이 소요됐다.

박 소방교는 창문을 깨고는 탈출구를 찾았다며 동료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박 소방교는 4층 높이였지만 반대편에 높은 언덕이 있어 뛰어내릴 수 있다는 판단에 4층 창틀을 지지대 삼아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뜨거운 열기로 인해 약해진 창틀은 힘을 가하자마자 맥없이 부서졌고, 박 소방교는 4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박 소방교는 우측 다리의 개방성 골절과 아래턱과 치아 11개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한 차례 수술을 거쳐 해가 바뀐 1월 2일 새벽에서야 다행히 의식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고된 병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치료비나 생활비 문제도 공상처리 절차가 워낙 복잡하고 까다로워 치료비를 지급받는 데까지 적게는 두 달에서 많게는 넉 달까지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결혼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자금은 물론 재활치료와 턱관절 치료, 임플란트 비용 등을 자비로 3천만 원 가량을 지불했다.

박 소방교는 "경찰은 경찰 병원이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소방관은 마땅한 소방병원이 없어 치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신체적인 아픔은 언젠가 치료를 통해 아물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외상 후에 오는 스트레스 장애인 것 같다"며 "3일 전에 모 방송사에서 당시 사고 장면이 자료 화면으로 나왔는데 그 이후로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신체 치료는 정부에서 어느 정도 보조를 해주고 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봄이 오면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다. 불의의 사고만 당하지 않았다면 여느 신혼집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박 소방교는 "그동안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던 여자 친구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치료를 끝내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며 "아직 치아 치료나 턱관절 치료가 절반밖에 진행되지 않아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내년 가을이면 소방서도 복귀하고 결혼식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보였다.

/ 박광수

ksthink@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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