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일본은 힘이 빠졌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했던 일본 국민들의 자존심으로서는 쉽게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발단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2'를 참관하던 이건희 회장이 '일본은 너무 앞서있다 힘이 좀 빠진 것 같고, 중국은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라고 한 지적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IT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그룹 총수의 개인적 의견으로 받아들인다면 좋겠지만 일본 네티즌들은 '대기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기초 기술력 부족' 그리고 '삼성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의 일본 부품 및 기계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한국 산업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해프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간과할 수 없는 약점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새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의 중소기업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해 왔으나 2000년대 들어 성장추세가 둔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저임금 이점의 상실, 하도급 생산비중 하락, 사업체수 정체 등 성장 동력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모기업과의 하도급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 관행과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 등은 하도급 중소기업의 수익성 악화, 독자적인 성장역량 약화를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경제는 반도체, 휴대폰 등 수출효자 품목의 핵심부품이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수입되고 있어서 완제품 수출이 증가할수록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대일 의존형 산업구조를 보여 왔다. 완제품 중심의 경쟁구도가 소재부품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소재부품이 신기술·신제품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및 소재부품산업의 현재 상황이 지역산업육성의 성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중심의 경제활성화 전략'(1997년)이 발표된 이래 다양한 지역산업육성 정책이 추진되고 재정투자가 확대되어 왔으나 결과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현 정부가 공간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는 광역경제권 간에도 2000년대 들어 지역내총생산의 성장률 격차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충청권 3개 지역 광역자치단체장들이 21세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가치인 지역균형발전정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역설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연유한다.

바로 여기에 지역산업육성의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일본 네티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기초 기술력 부족, 소재부품산업의 높은 대일 의존도 등은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 지역에서 중소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중요성을 더해가는 소재부품산업 육성의 생태계는 미흡한 까닭이다.

해법은 지역중소기업의 독자적인 성장역량 제고, 취약한 설계기술 및 핵심부품의 원천기술 확보, 차세대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한 단계별, 맞춤형 지원시스템 구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충북의 경우 세계적인 3개 파운드리 대기업을 기반으로 반도체산업 클러스터와 협력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해온 반도체산업이 한계에 봉착한 현실에서는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통해 전후방산업 인프라를 공고히 하면서 차세대 반도체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거점지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장기적으로 충북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반도체 공정기술을 접목해 바이오와 그린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융복합산업의 메카로 도약하는 전략마련도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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