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고 생각될 때, 사실은 그때가 새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말, 살면서 더욱 실감하게 되는 진리이다." 김혜윤 수녀의 성경에세이 <생손앓이> 중에 나오는 말이다.

일에는 흔히 때가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일에는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다 맞는 말도 아니다. 때를 놓쳤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때가 있다고 믿어도, 때를 놓쳤다고 생각해도 적절하게 자기발전의 약으로 활용하면 된다. 때가 있다는 말은 일종의 '비합리적 신념'이란 것.

-'때'가 있다? 환경결정론적 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때가 있는 거야", "젊은 너희 때가 좋았지", "'배우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거야"란 말을 자주한다. 그럴 수 있다. 밝혔듯이 한 부분 적절한 시기라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환경결정론(determinism)'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해석은 이렇다. 우리의 자연환경은 사계절이 매우 뚜렷하다. 기온변화가 심하고 그 기후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파종기, 즉 때를 놓치면 농사를 그르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이 결국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는 일종의 진리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다.

그렇다면 그 '때'라는 것이 과연 정해진 시간이며,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통념일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 딸 아이는 올해 세 번째로 대학에 도전했다. 필자도 늦게 박사공부를 했다. 내 아내도 50대 중반에 상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지만 개회(介懷)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은 많다. 만학도(晩學徒)들도 있고 뒤늦게 인간 승리를 일궈낸 사람들도 있다. 인생을 계획한 그대로 오차 없이 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때'라는 정해진 시간은 따로 없다는 것, 오늘 필자가 가족 이야기까지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때라는 것이 결코 하고자 하는 의지의 방해물이 될 수는 없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내면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때론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 된다.

그래도 힘들다면 하루 이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태도로 모든 생각을 내려놓아도 좋다. 과거 필자도 그랬다. 마음이 괴로웠을 때, 실패했을 때, 늘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찬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자신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서 세상을 이긴 사람은 없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그랬고, 오늘을 사는 보통의 사람들도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보여도 이들 역시 자신을 이긴 사람들이다.

-다시 재도전을 준비하자-

올해도 입시철이 끝나가고 있다. 좋은 결과를 얻어 웃는 학생들도, 실패로 아픔을 겪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오히려 실패란 쓴잔을 마시고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감 속에 있는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두 번쯤 실패했다고, 또 때를 놓쳤다고 크게 낙담하지 말자.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보자. 인생을 길게 보면 1~2년은 늦게 가도 괜찮다.

이번만큼은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말, 다 때가 있다는 강변, 이런 말들은 모두 비합리적 신념으로 여겨보자.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보자. 단,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학습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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