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카페> 이난영

어린 시절 몸이 약해 늘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래서 혼기가 지났음에도 가족들은 내가 어린애 인줄 안다.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중매를 하겠다고 찾아오셨다. 아주 좋은 혼처라 당연히 반길 줄 알았더니 아직 어린애를 무슨 시집을 보내느냐고 그냥 돌려보냈다. 그때가 스물여섯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잠깐사이 스물여덟이 되었다. 엊그제까지 어린애 취급을 하더니 이제는 빨리 결혼하라고 성화다. 지금은 서른을 넘긴 아가씨가 많이 있지만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서른을 넘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이듬해는 아홉수라 혼인하면 좋지 않다고 여기저기 중매를 부탁했다.

아홉수라는 것은 나이의 끝수에 아홉의 숫자가 든 해로 아홉수에는 신변에 재앙이 오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등 불행이 따른다는 전례의 풍설이 있어 예로부터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아홉수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 최일범 성균관대 교수(유학동양학부)는 "아홉수 금기가 단순한 속설이라기보다는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얻어온 '조심과 경계'라는 지혜로 봐야 한다"고 했다. 동양사상에서 '9'의 다음 수가 완성이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영(0)이며, 무엇이든 끝날 때가 가장 조심스럽고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숫자에 투영된 것이란 얘기다.

중매가 많이 들어왔지만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왕이면 아홉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 결혼하길 바랐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어 포기할 즈음 지금의 남편을 둘째올케의 소개로 만났다. 인상은 좋은데 나이가 들어 보여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 마음과 달리 양쪽 집 어른들은 너무 좋아 하셨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궁합도 잘 맞고 내년에는 아홉수인 만큼 그해에 결혼식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서둘렀다. 썩 내키지도 않는 결혼을 만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허둥지둥 하고 싶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다 아홉수가 꼭 나쁜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평소 내말을 잘 들어 주시는 어머니는 며칠을 고민하시다 네 생각대로 하라고 양보하셨다.

결혼을 미루고 나니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대수냐고 오빠들이 야단이었다. 오빠들은 나한테 직접 야단을 치지 못하시고 어머니만 졸랐다. 결국 어머니가 앓아눕게 되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병이 났다고 생각하니 너무 죄스러웠다. 고민 끝에 결혼을 허락했다. 허락하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하자는 시어머님의 요구에 의해 스물아홉 일월에 결혼식을 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요하단 말이다. 따라서 결혼에 앞서 고려해야 할 금기사항도 많은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아홉(9)수'를 피하라는 것이다. 그래 대부분 가정에서는 신랑신부의 나이가 29,39세일 때 결혼식을 극히 피하고 있다.

그런데 스물아홉에 결혼식을 하고 나니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 되었다. 이왕 하는 것 작년에 할 것 잘못했다고 후회도 했다.

조심스럽게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아홉수에 결혼하면 좋지 않다는 말은 기우에 불과 했다. 결혼하면서 좋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혼하고 바로 아기가 있어 그해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시부모님에게 큰 기쁨을 안겨 드렸고, 직장도 진천에서 청주시내 그것도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모교인 청주여고로 영전을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7을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다. 7을 신성시하여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 이유는 나라마다 다르나 7이란 숫자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은 같은 것 같다.

허지만 내게는 아홉수인 9가 행운의 숫자인 것 같다. 스물아홉만 행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홉수가 들 때마다 영전을 하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았다. 아홉수가 드는 해에는 가족들 또한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여 그 어떤 해보다도 기쁨과 보람이 충만했다.

그중에 가장 큰 행운은 쉰아홉에 꿈에 그리던 서기관 승진, 그것도 도교육청 여성행정직 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승진하여 여성공무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일이다. 아홉수는 내게 정말로 큰 행운을 주는 감사하고 고마운 숫자이다.

안일한 생활에서 방관과 나태가 따르고, 어리석은 행동에서 실수와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는 조상의 교훈인 아홉수! 10년 주기로 주의를 경고한 아홉수를 의식하여 순간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남은 인생을 보다 참되게 살아가련다.



▶2000년 공우문학, 한맥문학으로 등단
▶청풍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현)
▶충청북도교육청 재무과장 역임

▶ lnlny2945@hanmail.net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