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정미·사회부

가게라고 할 것도 없었다. 시장 거리에 박스를 내놓고 두부며 도토리묵, 콩나물, 호박, 시금치, 청국장 등을 팔았다. 정작 가게 안에는 물건이 없다. 평생 노점에서 장사를 해온 할머니에겐 번듯한 가게가 오히려 낯설었을 것이다. 낮은 평상과 작은 텔레비전만이 서문야채 조광호 할머니의 적적함을 달래줬다.

가게 한 켠에서 수북하게 쌓인 작은 약병을 발견하고 물었다. "감기약이네요. 할머니 감기 걸리셨어요?" "아녀. 기침해도 먹고 골아퍼도 먹고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먹어주는겨. 내가 아퍼서 드러누우면 자슥덜 고생하잖어."

할머니는 매일 새벽 손수레를 끌고 육거리시장으로 향한다. 하루치 물건을 떼오기 위해서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은 할머니는 "구루마(손수레)가 없으면 걸어댕기도 못해"라며 손수레를 끌고 시장에도 가고 약국에도 가고 병원에도 간다. 서문시장에서 육거리시장을 다녀오는 데만도 한시간 반이 걸린다. 도토리묵과 두부를 두모씩 사고 청국장까지 1만원어치 시장을 봤다. 할머니는 구정에도 없던 대목을 만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날 아침 할머니는 콩나물 1천원어치를 팔았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날의 콩나물은 서문왕족발 골목, 중화요리집 복성관 부부의 인정이었다.

중앙공원 노인들을 위해 3천원짜리 자장면을 파는 복성관의 손문후·최수영 씨 부부는 조 할머니 가게에서 콩나물과 두부를 산다고 했다. 할머니의 하루 매출 평균은 1만원을 넘지 않는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시장을 갈때마다 도토리묵을 샀다. 한 번은 청주제복사 박일균·허영자 씨 부부와 나눠먹고 또 하루는 서문칼국수집을 운영했던 김동진 씨 부부와 나눠먹었다. 복을 나누는 기쁨은 복성관 주인장 부부가 알려준 것이다. 서문시장에 삽겹살 거리가 조성되고 시장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청주시도 충북도도 시장활성화를 위해 삽겹살집 주인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뭔가 될 것도 같다. 열기도 훈훈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삽겹살 한 번 먹으러 가야지"라고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누구도 원래 있던 시장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인정과 복이 흐르는 서문시장의 오늘은, 그들에 의해 현재진행형인데도 말이다. / war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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