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세기를 말하다<45>1960년대 헝가리 '메이드 인 헝가리아'(게르겔리 펀요, 2009)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세력권에 포섭된 헝가리에서는 1949년 공산주의 정권이 출범했다.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합당한 근로자당을 이끈 철저한 스탈린주의자 라코시를 필두로 이루어진 공산주의화에 대한 헝가리 민중의 불만은 1956년 10월 23일 1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봉기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11월 3일 무력을 앞세운 소련군의 개입은 탈스탈린적 개혁을 시도했던 너지 정권을 전복시키고 사회주의노동자당에 의한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케 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게르겔리 펀요 감독의 뮤지컬 영화 '메이드 인 헝가리아'(2009, 비디오 제목은 '아이 엠 뮤직')는 실제 유명 록 뮤지션인 미클로스 페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중) 시인의 애도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 수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20만 명이 국외로 망명했다. '메이드 인 헝가리아'에서 미키(타마스 자보 키멜)의 부모 또한 그 날 이후 조국을 등지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조국을 잃은 이들에게 조국만큼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곳은 세상에 없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자 미국 CIA는 이민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헝가리에서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48시간 내 미국을 떠날 것을 통고받은 미키의 아버지(타마스 듀나이)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6개월 체류한 끝에 어렵게 귀국 허가를 받는다. 4년 6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멀었다.

"왜 헝가리로 돌아왔소?" 공항에서 환영객은커녕 무장한 군인들에 연행된 미키의 가족은 차갑고도 신랄한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입국 허가 절차에서 느꼈던 숨막히는 긴장감은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여긴 헝가리다. 모두가 눈을 뜨고 귀를 세우고 있어." 열여덟 살 아들의 객기가 걱정스러운 아버지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이 곳에 적응해야지. 참새면 참새처럼 살아. 앵무새처럼 시끄럽게 하고 다니지 말고."

아버지의 잔소리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노동절 행사에 샛노란 색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나타난 미키는 위스키와 엘비스 프레슬리 라이터를 보여주고 조니 캐쉬, 제리 리 루이스 등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옛 친구들을 흥분시킨다. 또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펼친 그의 로큰롤 공연은 피가로 밴드의 행진곡 풍 건건 가요에 심드렁해진 관중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사고야! 경찰 개입이 급한 상황이라고!" 지루함과 짜증, 실망으로 잔뜩 구겨졌던 관중들의 얼굴에 아연 화색이 돌고, 마치 몸 관절 마디마디에 기름이라도 친 듯 그들의 몸이 유연하고도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공산당 책임자 비갈리(피터 쉐러)에게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댄스 플로어는 나의 것/록으로 뜨거워지자…삶은 코카콜라/모조리 마셔 버려…",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들이 투입되고 급기야 물대포까지 동원되며 행사는 중단된다.

이 왁자지껄한 도입부 해프닝은 뮤지컬 영화로서 '메이드 인 헝가리아'의 정체를 분명히 하는 일종의 신고식이기도 하거니와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돕는다. 대규모 성공을 거두었던 미클로스 페뇨의 2001년도 뮤지컬을 영화화한 '메이드 인 헝가리아'에서 7년 전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났던 참극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사람 사는 세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영화의 분위기 또한 활기차다.

하지만 헝가리 사람들의 일상이 공산주의 정권에 의한 일당 독재의 강력한 그늘 아래 놓여있음을 이 시퀀스를 통해 일깨운다.



'메이드 인 헝가리아'의 세상에서는 레코드 하나만으로도 반국가 활동을 이유로 6년 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50년대에 이은 미국 로큰롤 음악의 열기를 체감하고 돌아온 미키의 음악적 활기와 역량은 '나쁜 바이러스'로 퇴치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적 환경이 미키의 라이벌 뢰네(이반 페뇨)를 범법자로 만든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이왕 폭력배들이 도덕을 외치는 세상에서 최고의 폭력배가 되리라" 작정한 그는 결국 자신의 밴드를 넘겨주며 미키를 응원한다.

로큰롤의 비트만 시작되면 순식간에 경찰이 무대를 진압하는 세상에서 미키는 마치 게릴라처럼 세상을 교란시킨다.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끓어오르던 헝가리 청춘들의 에너지는 미키의 음악을 통해 기어코 분출된다.

결국 젊은이들의 저항적 에너지를 달래기 위한 일종의 유화조치로 마련된 전국 음악 경연대회는 흥겨운 로큰롤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장대한 춤의 향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리고 이 해피엔딩에는 더 이상 경찰 진압도 물대포도 없다. 젊음의 환희와 음악이 주는 강렬한 기쁨이 있을 뿐이다.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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