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배두나(33)는 "북한의 이분희 선수가 되기 위해 자부심 하나만 챙겼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현정화(43)를 연기한 하지원(34)과 탁구로 경쟁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으로 시작한 영화가 바로 '코리아'다.

북의 대표선수 이분희(44)가 되기 위해 탁구채부터 반대로 잡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탁구를 쳐왔지만 완벽한 이분희가 되고자 글씨 한 번 써본 적 없는 왼손으로 탁구 연습에 돌입했다. "해보다 안 되면 오른손으로 치자"는 제작진의 제안에도 배두나는 "이분희 선수가 왼손잡이면 왼손으로 탁구를 치는 게 맞다. 내가 이것을 소화 못하면 이 역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배우의 기회를 빼앗기 싫었다"며 이를 악 물었다.

배두나는 1991년 결성된 사상최초 남북 단일탁구팀의 북측 간판스타 이분희의 강인함을 '코리아'에서 그래로 재현해냈다.

4차원 생각, 차갑고 무뚝뚝할 것 같다는 선입견은 지레짐작일 뿐이다. 배두나는 호탕하게 웃고, 풍부한 표정을 지으며 적극적으로 답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연습했다"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사양했다. 이분희를 만난 적은 없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웠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언제나 실존 인물이 없었다. 어차피 창조의 과정"이라고 상황을 수용했다.

"배우가 화려한 직업은 아니다. 물론 여배우로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열심히 연습해도 한 티를 내지 않고 멋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아한 백조가 밑에서 발길질을 하는 느낌이다. 평소 성격이 생색내기도 싫어한다"며 이분희화 하는 과정을 덮었다. 혼자만 고생한 것처럼 비쳐지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대신, 남들 칭찬에 열을 올렸다. "한국마사회 탁구팀이 고마웠다. 우리야 순수하게 함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니 열심히 했고 간절했지만 마사회 선수는 무슨 죄인가? 그들은 우리가 간절하게 원할 때 더 호응해서 가르쳐줬다. 그 분들이 이분희 감독이 돼줬다."

"시사회 때 선수들이 다 모여줬다. 현수막까지 준비해왔는데 너무 고마웠다. 특히 한 친구는 사고가 나서 목발까지 집고 나타났다. 그 친구들이 이분희를 몸에 입히기 위한 싸움에서 '언니, 외롭죠 힘들죠'라고 위로해줬다. 그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빵 터졌다"며 감사를 전했다.

배두나는 "평상시에도 이분희가 됐다"고 느꼈다. "안동, 낙산, 부산, 대구 등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숙소에서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 오고 심란했다. 나는 촬영할 때만 집중하고 빨리 돌아오는 편이다. 그 사람으로 사는 메소드 배우가 아니라 촬영이 없을 때는 배두나로 사는 게 익숙한데 이상하게 '코리아'는 촬영이 끝나면 내가 누구인지 헛갈렸다. 배우들과 웃으면서도 혼자 숙소에 있으면 내가 무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물도 이분희처럼 참고 또 참았다. "영화에서 눈물이 흔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을 소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결승전까지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순간순간 배두나가 빠져나와 연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마음 굳게 먹고 참았다. 결승전에서야 정신줄 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참아야 관객들도 같이 참고 내가 터뜨려야 큰 감동이 느껴질 것 같았다"는 치밀한 계산이다.

"6개월이 지나서도 한이 맺혀있는 것 같아요. 서러웠고 힘든 작업이었거든요. 제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이었어요. 이분희 선수에게 명성에 걸맞는, 최소한 폐를 안 끼치는 탁구를 치고 싶었어요. 나중에 이분희 선수를 만나게 되면, 저 어땠느냐고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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