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 칼럼] 논설실장·뉴미디어국장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불교계가 '이판사판'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원래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불교용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승려들은 도성(都城)에서 쫓겨나고 출입도 금지되어 있었다. 곧바로 최하 계층의 신분이 되었다.

천민계급으로 전락한 승려들은 폐사(廢寺)를 막기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잡역에 종사하며서 사원을 유지했다. 일부는 산성축조와 그 성의 수비를 맡았다. 이것이 사판승(事判僧)의 유래다.

반면 깊은 산속에 은둔하여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佛法)을 잇는 승려들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이판승(理判僧)이라고 했다. 이 두 부류의 승려인 이판과 사판이 합쳐서 이판사판이 되었다.

이 말은 당시 승려가 된다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뜻으로,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사태가 막다른 곳에 다다라 더 이상 어쩔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스님들의 도박, 음주, 동영상 파문에 이은 내부 계파간 싸움은 '이판사판'이다. 백양사 문중에서 방장·주지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이 세속으로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부 스님들의 룸살롱 출입, 성매수 의혹 등 내용을 열거하기조차 낯뜨겁다.

한 스님이 연일 방송에 나와 퍼붓는 욕설 섞인 원색적인 폭로전은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결혼한 스님, 부인을 둔 스님, 외국에 나가서 포커로 수백억원을 잃은 스님도 있다니 승려들의 타락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구니 스님 성폭행 미수사건에 공금 횡령, 조폭 연루설 등 순진한 불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추잡한 일들이 종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 종단은 계파정치로 짜여져 있다고 한다. 종책모임을 비롯한 종회의 의석분포에 따라 총무원 집행부의 주요 보직이 결정된다. 종책모임에서는 제식구 감싸기, 자리 나눠먹기, 금권정치가 관행이다. 이 때문에 사찰주지 선거에서 돈 봉투 논란이 불거지거나, 스님들의 비리가 폭로되기도 한다. 불교계도 계파정치가 문제였다.

이미 계파가 있는 정치판도, 우리사회도 '이판사판'을 닮아가고 있다.

4·11총선 전부터 통합진보당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정말 피곤하다. 지역구 경선에서 발생한 부정투표 시비가 통합진보당중앙위원회에서는 고함과 욕설, 단상 점거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판사판 난장판'이다.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의 총체적 부실, 일련의 대표단 회의, 당권파와 비당권파간 싸움, 그 과정에서 반민주적인 온갖 궤변과 억지, 물타기와 시간끌기 등 당내 의사결정 방해공작, 폭력적 추태까지 모든 걸 다 보여줬다. 통합진보당 일련의 사태 그 이면에는 계파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는 이판사판의 결정판이다. 퇴출된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온통 불법·비리 백화점이다. 신용불량자와 전과자들이 저축은행 오너 노릇을 하면서 고객예금을 멋대로 빼내 불법 대출과 투자로 날렸다.

그것도 모자라 제 주머니를 채우거나 마구 써댔다. "내 돈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높은 자리에 있을 때 한탕 해먹자"는 이판사판 심리가 발동한 탓이다. 법과 원칙이 사라지고 상식과 도덕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신성해야 할 종교계는 물론 정치권,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 삼성가 오너들의 재산싸움 등 우리사회에 깊숙히 파고 들어있는 '막장문화'는 건강한 사회를 해친다.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들이 모범을 보여야함은 자명한 일이다. 국민들은 공염불(空念佛)이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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