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위원·마케팅국장

요즘같은 불경기에 쇼핑하러가면 제대로 대접받는다. 젊고 아릿따운 여직원이 환한 미소로 극존칭까지 쓰며 옷을 골라주는데 지갑을 열지않을 재간이 없다. "아버님 드레스셔츠가 꼭 맞네요. 너무나 잘어울려요" "이 넥타이는 어때요? 참 세련되신것 같지 않으세요"라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아버님이라고 하고 넥타이까지 존대할땐 뜨악하긴 하지만 이 여직원이 좋은집안에서 자랐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민원 때문에 기업체에 전화해도 마찬가지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고객님!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할때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 같아 상했던 마음이 어느새 풀리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한 립서비스에는 간혹 반전도 숨어있다. 매장 뒷편에서 여직원들의 대화소리를 듣거나 친구 회사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같은 건물의 텔레마케터들이 흡연하는 장소를 지나칠때면 내 귀를 의심하게 된다. 이들이 "언니, 그 인간 졸라 재수없어", "아까 통화했던 걔 때문에 정말 짱나는거 있지!"라며 비속어를 들먹일땐 괜히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

물론 극히 일부의 사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냥함이 지나치면 장사속이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좋지않은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가식이면 어떠랴, 까칠한 표정에 쌀쌀맞은 말투보다는 나을 거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일부 여직원들의 이중성은 정치인들의 야누스적인 얼굴에 비한다면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유권자에게 천사의 얼굴로 한표를 부탁했던 후보들이 당선되면 악마같은 입으로 자신들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최근 민주통합당 이종걸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 돈 공천사건을 언급하면서 "(금품을 수수한)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레서 사과도 하지않고 얼렁뚱땅..."이라고 썼다. 여당의 대선후보를 '그년'이라고 표현한 이 의원은 4선 중진의원이다. 여론의 역풍을 받자 자신의 입장을 수시로 바꾸었다. 그는 조선시대의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인물이다. 막말에 비겁함까지 겸비한 그는 조상의 얼굴에 먹칠한 것이다.

이에앞서 같은당 임수경 의원도 얼마전 한 탈북자에게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그는 또 새누리당 하태경의원을 지칭하며 "그 변절자 ××,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태경 개××"라며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지방의원들의 막말도 원색적이긴 마찬가지다. 지난주 청주시의회 새누리당 전현직 부의장인 황모 의원과 최모 의원은 욕설과 폭언이 녹음된 전화통화 음성내역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년 왜 ××이야"라는 황 의원의 욕설에 "위 아래도 없냐. 누나도 없냐"며 받아치는 녹취내역을 공개했다. 황 의원은 물론 더 심한 욕설을 들었다며 반박했다.

의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고운말과 공손한 태도로 소중한 한표를 호소했던 것은 유권자들이 다 안다. 시장통을 돌며 상인들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부여잡거나 경로당에서 노인들에게 절하며 다정다감한 어조로 유권자들을 현혹시켰을 것이다. 또는 각종 토론회에선 젊잖고 고상한 화술로 지성과 교양을 부각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고 화장해도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평소에 하는 말은 그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사적인 공간에서 또는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시정잡배만도 못한 저속한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치인이다. 이런사람들 때문에 정치가 천박해질 수 밖에 없고 국회폭력이 해외토픽이 된다. 이러니 사람들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낄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무엇하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어도 단지 참신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인물에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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