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우 교수의 문화선진국에서 배우다 <8> 스페인의 문화유산과 현실경제

스페인의 문화 보고를 본 사람이면 경제 위기설에 가슴 아파할 것이다. 문화도 경제기초가 있어야 제역할을 하는 법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면 제조공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뛰어난 건축물과 역사유적지가 있으나 관광수입과 광물자원으로 현대국가를 이끌어가기는 어렵다. 역동적인 사람의 힘과 목표를 가진 사회분위기가 난국을 이겨낸다.

■ 스페인 왕조가 남긴 엄청난 문화유산

왕조의 흥망성쇠는 언제나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면 나라를 다스렸던 이전의 왕조는 사라졌다. 강력한 왕조가 출현하면 여러 왕조를 아울러서 큰 나라를 세우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 여러 근대국가는 이런 왕조가 다스린 영역을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아시아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는 수많은 왕조들이 꽃이 피듯 피어나고 꽃이 지듯 시들었다. 이런 왕조 중 근대에 들어와서 망하지 않았을 경우 그 유산을 승계국가에 그대로 물려주고 있다. 최고 최상의 전근대 문화유산이 온전하게 남아있게 된 것이다.

▲ 엘 에스코리알 건물 위용. 가로 224m 세로 153m로 궁전 교회 왕릉까지 있다.


스스로 변혁에 성공해서 근대국가로 변신한 나라는 왕조를 자랑스럽게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혁신을 이룬 나라도 왕조의 유산을 활용하는 역설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왕궁박물관을 일류 관광자원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망한 까닭에 최상의 문화유산이 약탈되거나 인멸된 것이 매우 많다. 어느 나라도 한 왕조의 문화 정수는 궁궐에 집중되어 있는데 조선왕조는 몇 차례 도성을 빼앗겨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근대에 들어와선 일본군이 궁궐을 기습했으며,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화 유산을 약탈하였다.

그럼에도 현재 경복궁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우리 안목을 새롭게 만든다. 유럽에서 이베리아 왕조가 넘겨준 문화유산은 정말 부럽다. 여러 궁궐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고,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그 위에 문화를 애호한 국왕들이 수집한 예술품이 미술관을 채우고 있다.

▲ 엘 에스코리알의 회랑 벽화. 대규모 전투장면을 세세히 그려 국왕의 위상을 과시한다.



■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여러 왕조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터를 둔 축구팀이 경기를 하면 국가대항전보다 치열하다. 그것은 왕조의 역사 때문이다. 이베리아 각지에 여러 왕조가 근거를 틀고 오래 동안 국가를 유지해왔다. 주요 도시는 그러한 왕조를 배경으로 건설되었고, 이를 문화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스페인의 역사는 역동적이다. 민족 배경은 물론 문화 정체성과 심지어 말도 다른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우열을 결정하고, 정복과 피정복의 역사를 계속해왔다. 아라곤, 아스투리아스, 바르셀로나, 카스티야, 레온, 나바레 등이 왕조나 왕국 또는 지역의 이름들이다. 그러니 오늘날은 전쟁 대신 축구 경기가 심리상 우열을 가름하는 혈전이 안 될 수가 없다.

스페인의 왕조들은 그리스나 카르타고 또는 로마가 세웠거나 지배했던 시기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8세기부터 서로 경쟁상태에 있었는데 유명한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합병으로 세력을 키운 왕조가 18세기 초에 패권을 차지해서 이베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전통을 계승한 부르봉왕조가 왕위를 잇고 있다.

▲ 궁전 박물관에 전시된 중세 기사의 갑옷.


■ 엘 에스코리알이 품고있는 엄청난 유산

스페인의 왕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알함브라의 이슬람 궁전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곡이 덕분이다. 5세기 초 로마제국 멸망 후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온 서고트족이 8세기 초에 와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에게 밀려났다.

그 때부터 기독교 왕국들이 영토를 회복할 때까지 약 8세기 간 이슬람 통치가 이어졌다. 그 마지막 왕국인 그라나다가 1492년에 함락되었는데 그 궁전이 알함브라 궁전이다.

이 궁전은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이슬람 양식으로 전각을 만들면서 분수와 물을 정원에 끌어들여 특이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알함브라 궁전.
하지만 스페인에는 크고 작은 궁전들이 많이 있다. 이 궁전들에는 경복궁의 빈 전각과 고궁박물관의 허전한 전시물만 보던 눈에는 놀랄만한 유물들이 들어 있다.

그 중 압권은 마드리드 북쪽 45km의 엘 엘에스코리알(El Escorial)이다. 처음 보면 달랑 건물 한 채처럼 보인다. 이 궁전은 본래 수도원으로 지어진 가로 224m, 세로 153m의 웅장한 건물이다.

그러나 펠리페 2세가 궁전으로 선택하고 지하에는 왕들의 관들도 안치되어 궁전과 교회 그리고 왕릉의 복합 기능까지 하고 있다.

현재 공개되는 여러 방에는 일품 그림들이 가득 걸려있다. 당시 사용된 탁자와 의자들은 호화로운 궁전생활을 상상하게 해주고, 장식장에는 화사한 색깔의 자기그릇이 들어있다.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공간은 품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궁궐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회랑이다. 긴 벽면에 대규모 전투를 재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말과 군대 그리고 무기의 수가 엄청나다. 왕조는 무력으로 국가를 세우고, 이슬람 왕조를 축출하였다. 그 영광을 나타내는 가장 극적인 그림이 바로 이 전투장면이었다.

이 회랑을 걸어가던 외교사절들은 스스로 옷깃을 추스렸을 것이다. 이때 강국의 원천은 그림의 소재와 같이 무력이었다. 그 무력을 장악한 국왕을 알현하러 가는 회랑에 장편의 그림으로 군대의 위력을 펼쳐낸 것이다. 누구든 조심스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 오늘날 경제가 뒷받침하는 문화의 힘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약탈한 인류문화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 말이든 적절하지는 않다.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했던 일을 아는 사람이면 이런 말로 그 실상을 덮을 수 없는 것을 안다.

하지만 스페인의 왕은 국력을 문화로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문화 대국 스페인으로 관광객을 집중시키는 배경이다.

지금 국력의 기본은 경제력이다. 문화의 보고인 스페인을 아는 사람이면 경제 위기설에 가슴 아파할 것이다. 문화도 경제기초가 있어야 제 역할을 하는 법이다.

한때 스페인은 세계를 지배한 무적함대를 가졌지만 그것은 옛일이 되었다. 피카소나 후안 미로미술관 또는 구겐하임박물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감당하지 못한다.

스페인을 여행하면 제조공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올리브농장과 끝없는 백사장이 이어진다. 뛰어난 건축물과 역사유적지가 있으나 관광수입과 광물자원 중심으로 현대국가를 이끌어가기는 어렵다. 역동적인 사람의 힘과 목표를 가진 사회분위기가 난국을 이겨낸다.

▲ 교회 건물 지하에 왕들의 관들을 안치했다.


■ 돌고 도는 흥망성쇠의 열쇠는 제조업

스페인은 강국이었을 때 문화에 저력을 남겼다. 집권자의 안목과 의지가 이뤄낸 성과였다. 또 문화인이 쌓아올린 탑이기도 했다. 세계 14위권(2011년 기준) 경제대국으로서 문화에 투자한 효과는 관광대국의 위용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유러화의 허상이 사회 역동성을 줄이게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 의지해서 경제 위상은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에서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높은 위상은 제조업에서 나왔다. 세 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도 공장이 보인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경제력을 갖게 된 우리는 일찍 노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어도 그 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러 나라의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전해준다. 제조업에서 기술력이 나오고, 기술력이 있어야 과학이 발전한다. 사회와 역사의 진보는 여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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