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위원·마케팅국장

'Everyday Low Price(매일 싼 가격에)'라는 캐치플레이스로 세계유통업계의 공룡이 된 월마트의 경영방식은 국내 대형마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월마트는 물건값을 획기적으로 낮춰 소비자 생활수준을 크게 개선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월마트보다 30년 늦게 시작한 국내 대형마트도 쾌적한 쇼핑환경에 저렴한 가격정책으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문화'를 확 바꿔놓았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대형마트는 엄청난 기세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해왔다. 대형마트가 '빅쓰리'체제로 경쟁구도를 갖춘 것은 1990년대 중반 설립된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이어 홈플러스가 문을 연 1999년부터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0조6천억원에 달했던 대형마트 전체 매출은 2011년 36조6천억원으로 10년간 세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성장률도 두 자리 숫자를 상회했다.

특히 후발주자로 영국 테스코사의 자회사인 홈플러스는 창립 10여년간 국내·외 유통업계 사상 유례없는 영업실적을 내면서 급성장했다. 국내기업중 최단기간 연매출 1조, 2조, 3조를 돌파하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지난해 전국 125개 점포에서 11조의 매출을 기록했다. 연평균 매출은 50%, 이익성장률은 그 세배인 150%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냈다. 홈플러스는 청주·청원에도 4개의 대형매장과 10여개의 홈플러스 익스플러스를 앞세운 지역 소매유통업계의 최강자다.

홈플러스가 놀라운 경영성적표를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선제적인 가격차별화 정책과 PB(Private brand)를 최초로 도입하는 등 지속적인 유통혁신이 주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점포수가 확대되고 대형마트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007년부터 성장력이 한풀 꺾이자 24시간 영업과 SSM을 앞세워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월마트가 들었던 '시장지배의 약탈자'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홈플러스가 올해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평가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것은 이때문이다. 홈플러스는 '2011년 동방성장지수' 평가에서 가장 낮은 '개선' 평가를 받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함께 동반성장을 누구보다 강조했으나 사실상 '낙제점'을 받아 망신을 당했다.

어찌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대형마트의 공격경영은 중소슈퍼와 재래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 납품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근로자와 중소 납품업자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공정한 경쟁 질서를 깨트려 결국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약탈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은 이들에겐 '소귀에 경읽기'였다. 기초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해 제동을 걸어도 이들은 맞소송으로 맞섰다. 국회가 전국의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휴일 영업규제를 월 4회까지 늘리고 야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영업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여론이 결코 이들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시장 논리만 따진다면 대형마트의 공격경영을 탓하긴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가까이 가서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한다는데 왜 막느냐"는 주장은 공정사회에 반하는 '강자의 논리'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노암 촘스키는 저서 '경제민주화를 말하다'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 강화와 규제 확대를 주장했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내세우는 것은 일부 재벌기업들의 횡포가 상식과 정도를 넘었고 이때문에 국민정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도한 규제가 글로벌기업을 추구하는 대형마트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영세슈퍼를 짓밟기 위해 탐욕스런 모습을 보인다면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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