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하는 생활지도 '기린과 자칼이 춤출 때'-김종숙 영동 양강초 교감

고등학교시절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우리의 입에서 나온 모든 소리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 공간의 어딘가에 모두 남아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난다. '정말 그럴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는 과학적 의문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내가 그 동안 해온 말들을 다시 녹음해서 듣게 될 때 어떤 말들이 가장 많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사람들은 무수한 언어들을 쏟아내면서 살아간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위로나 지지를 받기도 하지만 분노를 느끼고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말은 인간의 감정과 의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의사소통 방식임과 동시에 그 사람의 인격 그리고 삶의 수준과 사고의 틀을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도 대화의 방법에 따라 집 안의 분위기나 어떤 일의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을 하는가에 따라 사소한 일이 커다란 문제로 발전하기도 하고 심각한 일도 잘 풀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내면의 힘을 잃지 않는 따뜻한 말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보약이 되는 것이다.

독일어로 되어있는 작은 제목('기린과 자칼이 춤출 때')이 더 호기심을 끌었던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점에서는 이미 절판되어 새 책을 구할 수가 없었고 헌 책방에도 자료가 없어서 상담공부를 하는 후배를 통해 겨우 책을 손에 넣었을 때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기린은 심장의 무게만 약 17㎏으로 육지 동물 중에 심장이 가장 크고 머리와 가슴 간의 거리가 가장 긴 동물이다. 자칼은 야행성이고 죽은 고기를 찾아다니며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방을 먼저 공격해야 살 수 있다는 본능적 성향을 지닌다. 이 책에서 기린은 가슴으로 공감하는 비폭력 대화를 상징하며 자칼은 지시나 명령을 강조하는 폭력대화를 상징한다.

자칼이 자주 사용하는 대화의 도구에는 잘못을 지적하여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브레이크 걸기, 마치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얘기하는 위장 두건, '계속 그러면 어디 두고 보자'라고 위협하는 채찍,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좀쇠의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 책은 평소 자칼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결책 보다는 공감을 중시하는 기린대화의 4단계를 안내해 준다.

1단계는 관찰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자극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카메라처럼 어떤 비난이나 평가도 포함되지 않도록 객관적이면서 명확히 아는 단계이다. 2단계에서는 자극, 관찰과 관련하여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 때문에 나의 기분을 망쳤다고 판단하며 그 것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 하지만 비폭력 대화에서는 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원인은 나의 내적 현상에 있다고 본다. 그 다음은 비폭력대화의 중요한 열쇠가 있는 3단계로 자칼 세상을 기린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 전환점이 존재한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마지막 4단계는 창의성과 지혜가 요구되는 부탁의 단계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내 욕구를 흔쾌히 들어주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책임감, 부끄러움, 의무감 때문에 들어 주는 부탁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의견일치, 조화와 소통을 위한 구체적인 부탁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기린대화의 4단계를 거치기 전에 우리는 어떤 귀로 들을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향해 자칼의 귀를 열어 놓으면 상대방의 말을 공격, 비난, 평가로 받아들여 반격하게 되고, 자칼의 귀가 나를 향해 있으면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게 된다. 나와 상대방을 향해 기린의 귀를 가지면 자신을 이해하면서 상대방의 욕구를 공감하게 된다.

이 세상사람 모두가 기린의 귀를 가지고 기린의 언어로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야말로 환상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언어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상담을 공부하고 공감에 대하여 많을 책을 읽었지만 툭툭 튀어 나오는 자칼의 언어들이 가족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알고 있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까닭이다. 기린의 대화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평소 가족들에게 자칼의 언어를 많이 쓰다가 갑자기 기린 언어를 구사하려고 하면 쑥스러워서 말이 잘 안 나오는데다 용기를 내어 한마디 했는데, 남편은 '당신 안하던 행동을 하고 왜 그래?' 자녀들은 '엄마! 하던 대로 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칼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좋은 대화법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의식하면서 반복된 연습을 통해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 속에 진정한 앎이 이루어지게 된다.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가는 국화 향을 가슴에 품고 단풍처럼 우리의 삶도 곱게 물들이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저녁 한자리에 모이게 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기린의 말 한마디를 건네면서 웃어 준다면 이 가을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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