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백경미 충북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별다른 슬픈 일도 없는데, 병이 난 것도 아닌데 가슴이 콕콕 쑤시고 아린 느낌,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뛰는 느낌"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사랑의 생리적인 증후이다. 그 뿐이겠는가?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모든 사물이 새롭고 아름다운 느낌..."

남녀간의 열정적인 사랑의 경험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 사랑의 감정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킬만한 위력으로 인류역사상 많은 염문을 낳기도 했지만 역사를 거슬러 회자되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 역사적 변화와 관계없이 영구적이며, 인간으로 누리는 당연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남녀간의 열정적 사랑은 성역할과 이상적 여성성과 관련된 다분히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태동한 개념이다.

산업화 이전에 공사영역이 분리되기 이전에 사랑의 문제에 있어 남녀간의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남성은 가족을 부양할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대표 노동자로서 지위를 가지게 된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낭만적 사랑에 의해 한 여성을 선택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핵가족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남성이 가족의 생계부양자로 의무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 여성의 가치는 새롭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즉 여성은 남성과 공적 영역에서 똑같은 임금을 받을 수 없고, 남성의 감성적 동반자로서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을 가져야만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여성의 감정노동은 남성의 공적영역의 노동과 달리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그 일이 여성으로서의 성취이며 자아실현이자 행복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힘은 바로 여성이 갖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에 의해 가능했다.

남녀간 사랑의 스토리를 의미하는 로맨스(rommance) 역시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통속소설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로망(roman)에서 유래되었는데, 산업화와 더불어 발달된 인쇄술은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를 대량으로 생산해냈고 여성들은 이에 열광하며 감정노동자로서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사회화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18세기 산업화 초기가 아니라 21세기 첨단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사랑의 여성화'를 목격하고 있다. 자원의 불균형한 분배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완성된 노동자 또는 주체로 보기보다는 남성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감정적 노동의 임무만을 수행하는 수동적 존재로 규정하도록 강요한다. 결국 남녀관계의 낭만적 사랑은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므로, 어떤 분석도 필요 없다는 생각은 남녀관계에 대한 성찰을 갖지 못하게 하여, 서로에 대한 소외감을 가중시키게 된다.

많은 여성들의 바람과 달리 가슴을 뛰게 하는 열정적 사랑은 3년 이상 지속되긴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좋은 계절에 다시금 사랑을 추억하고 가슴에 품는 것은 분명 이 감정이 아름다운 감정임에 는 틀림없는 까닭일 것이다. 그 유명한 '사랑의 기술'의 저자인 에릭프롬은 "사랑에 대해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사랑을 유지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실천하고 함께 노력한다면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지만 그 감정은 서로의 신뢰와 소통, 노력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랑의 감정으로 분명 대체될 수 있다. 이 가을 남녀노소 모두 성숙하고 합류적인(confluent love) 사랑을 경험하길 바란다. / 충북여성발전센터 연구개발팀장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