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그림엽서> 김규성

간판없는 밥집

집에서도 받아보지 못하는 고운 밥상에

내 여자일 수도 있는 허방의 서방 같은

검은 머리 과수댁이라 좋아했다

어느날 갑자기

시시한 남자들을 걷어차고

안방으로 들어앉은 사람

감싸고 넉넉히 안은 인품이 있었다

점잔한 말솜씨와 깔끔한 차림

실상의 능력이란

평생 직업을 가진 적이 없으며

마늘 까고 배추 다듬어 김치나 버무리는 새벽 첫 손님으로 이웃집 이발소에 외상 버리를 깎고

손님 술상머리에 들은 소리로 거간을 하고

은행 심부름 뒷돈이나 챙기는

자네 장모 위하듯 나 장인한테 잘해야 된다

어려운 살림 신경 써달라는 새아부지

인감 좀 빌려주게

이 나이 먹도록 뙤약볕 장보기가 민망해

검은 세단이 가게 앞에 할 일 없이

서 있다 며칠씩 외박하는 깔때기

세월이 내 편이 아니니 놀다나 가야겠지

없는 길에 문을 내라는 이름

그녀의 남편

이젠, 개잡놈

원수가 되어버린 놈

가장 먼저 썩어질 물건으로 그랬다

내가 시에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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