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카페> 유인종

오두막집에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여인이 있었다. 집 뒤로 흐르는 시냇물에 통나무다리가 있었는데 아들이 이 다리를 건너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이렇게 아이를 보낸 여인은 삭발한 후 산으로 들어갔지만 이 슬픈 사연을 모르는 물은 무심히 흐른다하여 무심천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안고 청주의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이 무심천이다. 무심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물이 거꾸로 흐르는 줄 알았다.

무심천 둔치에 요즈음 제철을 만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코스모스는 신이 제일 처음 만든 꽃이라고 한다. 무질서와 혼돈을 카오스라 하고 질서와 조화를 코스모스라고 한다. 태초에 조물주가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만들었으니 그때 이미 이 꽃은 혼돈을 발 아래로 밟고 질서의 꽃으로 피어났었나보다. 그러니 이 꽃을 꺾는 것은 질서를 만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은 거꾸로 달리기 경쟁을 하려는 듯하다. 동요를 불러야 할 아이들이 몸을 꼬며 성인 가요를 부르는 게 그렇고, 가수들은 노래보다 춤의 경쟁을 한다. 스승은 회초리를 꺾은 지 오래이며 청소년은 하늘을 쳐다보지 않으며 시인이 붓을 놓고 농부가 추수할 곡식을 그냥 갈아엎는다.

언어의 절제와 식욕을 다스리는 능력은 인격의 척도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지도자가 여유로운 유머를 버리고 막말을 토해내고, 신하는 벌거벗은 임금에게 거짓말을 하니 온통 카오스요 코스모스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경종을 울리지 않는다. 너나없이 함께 휩쓸려 갈뿐 아무도 앞장서서 종을 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벽이 되어도 닭이 울지 않고 해지는 언덕에서 개가 짖지 않으며, 처서가 되어도 모기 주둥이가 비틀어지지 않는다.

미국 여행길에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 본 맨해튼 거리는 아름다웠다. 건물마다 형형색색이요, 푸르른 숲이 우거진 도심 속에 쭉 펼쳐진 거리의 차량들은 강물이 흐르듯 여유로웠다. 그야말로 코스모스였다. 그 건물 일층 로비에 걸인이 무단출입을 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걸인을 청진기로 진찰해 주는 경찰관의 눈빛은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소파에 누워 있는 걸인에게 허리를 굽히고 진지하게 긴 대화를 나누는 친절한 경찰관의 모습은 부럽고도 놀라운 코스모스였다.

어린 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니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동요를 부르며 살 일이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내 손자가 젓가락이 나란히 놓인 밥상 앞에서 조신한 몸가짐을 배우며, 손녀는 댓돌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규수가 되어주길 바란다.

유태인들은 자녀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탈무드를 가르친다. 우리는 조상이 남겨준 삶의 지혜인 속담을 귀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진정 질서와 조화가 코스모스라면 우리 속담의 교훈만한 코스모스가 더 어디 있겠는가.

짐수레에 달린 네 바퀴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추월하지 않으니 억지 부릴 일도 다툴 일도 없다. 학교 길에 나란히 걸어가는 동무들이 거꾸로 가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는 정겨운 거리는 어디에 있는가.

소녀의 수줍은 얼굴 같고 화장하지 않은 청순한 여인의 얼굴 같은 꽃 코스모스, 이번 주말에는 갈바람에 살랑대는 살살이 꽃들이 하늘하늘 피어있는 무심천변을 찾아 옛 동무의 손을 잡고 무작정 걷고 싶다.

속리산은 속세를 떠나 있어도 우리는 속세를 떠날 수 없고, 무심천은 무심히 흘러가나 우리는 무심할 수 없기에 가슴을 앓는다. 그러나 무심천이 거꾸로 흐르는 줄로 사람이 착각할지라도 물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으니 고맙다.

필경 내년 이맘때에도 무심천 언덕에 코스모스는 줄지어 피어날 것이다. 신이 제일 처음 만든 그 꽃이.

-이슬에 목욕해 깨끗한 너의 몸/부드런 바람이 너를 껴안는다/ 코스모스 너는 가을의 새 아씨-



▶'문학공간' 수필, 시 등단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연대 회원
▶대한기독문인회 부회장
▶수필샘회장, 충북수필문학회사무국장 역임
▶저서 수필집 '별처럼 산처럼' 등

▶youinchong@hanmail.net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