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세기를 말하다 <77> 1980년대 독일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2차 대전 패전 후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을 각각 수립, 동서로 분단된 독일은 1969년 서독의 브란트 내각 출현을 계기로 관계 급진전을 모색했다. 1972년 동·서독 상호간 기본조약 체결에 따른 운송, 서신, 통신 및 문화교류는 경제 협력을 이끌면서 평화공존체제 구축에 기여했다.

연평균 1100만 명의 상호방문과 연평균 12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 규모, 그리고 동독지역 내 서독의 방송 시청 등은 폐쇄된 동독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결국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 주민의 대규모 국경탈출 시도에 이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귀결됐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은 독일 통일 이전 구동독에서의 삶을 돌아본다.

그는 단호하다. "당신은 우리가 무고한 시민을 가뒀다고 믿는군. 우리 인도주의 정부를 그 따위로 의심한다면 구속돼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쯤은 알 텐데." 고요한 호수처럼 깊게 가라앉은 청회색 눈동자는 말한다. 그 어떤 항변과 저항, 혹은 호소도 소용없다는 것을.

단 한 순간의 쪽잠도 허락지 않는 40시간의 인내심 싸움에서 지는 쪽은 이미 정해져있음을. '오만한 국가의 적들'과 싸운다는 국가보안부 대위이자 비밀 경찰대학 교수 비즐러(울리쉬 뮤흐)의 결기어린 태도에서는 얼핏 숭고함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국민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를 목표로 10만 명의 감청요원과 20만 명의 스파이가 암약하던 1984년의 동독. '도청이란 직업에서 항상 사회주의의 적들과 대면하게 될 것'임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비즐러는 헴프 장관(토마스 디엠)의 특별지시로 새 임무를 맡는다. '민주공화국 최고의 영혼의 기술자와 가장 아름다운 진주' 커플인 시인이자 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여배우 크리스티나-마리아 질란드(마르티나 게덱)가 그의 새로운 목표물. 비즐러는 예의 단호함과 전문가적 치밀함으로 업무에 돌입한다.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집 구석구석에 설치된 도청 장치와 거리의 카메라를 통해 통째로 관찰자이자 감시자인 비즐러에게 포착된다. 그런데 떨어지는 바늘 소리도 감별할 뛰어난 청각과 스쳐가는 내면의 떨림마저 감지하는 시각의 작동은 비즐러를 전혀 엉뚱한 길로 이끈다. 그들의 삶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전지전능한 시선 권력의 소유자지만 절대 행동하거나 말하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수동성으로 비즐러는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의 구심력에 휘말린다.

물샐 틈 없이 단단해보였던 그의 삶이 속절없이 흔들린 건 무엇보다도 그와 드라이만이 같은 부류였기 때문이었다.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식당 어디에나 자유롭게 앉는 것으로부터 사회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사회주의 국가 독일을 사랑하는 드라이만의 신념과 닮았다. '부르주아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드라이만과 '당의 창과 방패가 되자는 맹세'를 가슴에 새기는 비즐러는 '끔찍한 이상주의자'라는 점에서 쌍둥이 같다. 혹은 도플 갱어라고 할까.



그런 만큼 아름다운 여배우를 탐하는 추악한 음심은 비즐러의 국가에 대한 헌신에 깊은 상처를 낸다. 예술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등치시켰던 만큼 예술현장과 예술가를 억압하는 폭력적인 정부에 대한 드라이만의 분노도 비등점을 향한다.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는 다른 방식으로 '동독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주는 실천에 나선다. 그와 '고통스런 진실'을 함께 목격했던 일종의 연대자로서 비즐러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라이만을 돕는다.

'타인의 삶'은 공포정치와 통제체제의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양상으로 동독의 현실을 고발하는 대신 자살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요약한다. 동독의 자살률은 유럽에서 헝가리 다음을 차지하지만 동독 정부는 1977년 이래 자살률 통계 자체를 발표하지 않았다. '희망의 죽음'으로 불리는 자살은 영화 속에서 7년 동안 연출을 금지당한 명망 있는 연출가, 권력자의 추악한 욕망에 육체적으로 능멸당하고 예술에 대한 사랑마저 훼손당하던 여배우의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만다.



격동의 1989년 11월이 지나고 몇 년 뒤 드라이만은 모든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동독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집과 자신이 'HGW XX/7'이라는 이름의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보호됐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문에 그가 기약도 없는 시간을 어두운 지하실에서 편지 검열을 하며 보냈다는 것도. 드라이만은 통일 이후 우편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비즐러를 확인하지만 말없이 돌아선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처음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타인의 삶'에서 차가운 금속으로 된 각종 도청 장치들과, 감시와 통제에 복무하는 비즐러의 삶은 그대로 통일 이전 동독의 현실로 은유된다. 이러한 현실에 균열을 초래하고 결국 붕괴로 이끄는 것은 브레히트의 아름다운 시와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는 피아노 선율에 감화되는 영혼의 떨림이다. 드라이만이 헌정한 '비즐러를 위한 책'은 얼굴을 맞닥뜨리지 않은 채 이루어졌던, 예술을 매개로 한 선한 영혼들의 교감의 증거물이다.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