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어찌하다 보니 10년째 매년 책을 한권씩 펴내게 됐다. 처음에는 나의 삶과 꿈을 기록하겠다는 생각으로 책 펴내는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문화예술 현장에 있으면서 국내외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더 큰 미래를 빚으며 문화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열정을 담게 됐다.

세계의 문화도시·문화복지 현장을 소개한 책도 펴냈지만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이 땅의 소중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엮기도 했고 골목길 풍경을 담은 여행서적도 만들었다. 글만 담지 않았다. 화가와 사진작가 등이 참여하는 이른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이끌기도 했다. 사람들은 단연 협업을 통한 결과물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졌다.

책을 펴내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마음 먹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책을 펴냈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권 이상의 책을 섭렵해야 하고, 수많은 경험과 생각을 조합한 뒤 한 편의 글로 정리해야 하며, 테마를 정해 구성과 편집과 기획 등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는데 마치 작은 천조각을 모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거대한 조각보를 만들듯이 고난과 역경의 마디마디를 견뎌내지 않으면 결실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책을 선별적으로 읽는다. 근무중에는 가벼운 잡지를 읽고, 주말과 휴일에는 전문서적을 읽으며, 해외 여행이나 출장길에는 가볍고 인생에 용기가 될 수 있는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지난 주 서울 출장길에서는 배우 정애리씨가 쓴 '축복'이라는 에세이를 서울역 대합실과 기차안에서 읽었다. "희망만으로는 살 수 없다지만,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녀의 가슴 뜨거운 메시지를 단숨에 읽어가면서 나는 어떤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지, 희망을 일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상념에 잠겼다.

빌 게이츠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하루 한 시간씩, 주말에는 서너 시간씩 반드시 책을 읽는 독서광이었다. 책을 통해 동서고금의 지식과 지혜를 터득하고 창의적인 역량을 일구었으며 IT산업의 황제로 등극하는 디딤돌을 만들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소원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사형이 선고된 후 여순감옥에 수감돼 있었는데 그는 항소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펴내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동양평화론'집필이 끝날때까지 사형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놈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형장에서 마지막 소원을 물었을 때 그는 "5분만 시간을 주세요.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놈들의 계획대로 사형이 집행됐지만 그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할 정도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지적자양분을 쌓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피끓는 조국애와 행동하는 양심을 잃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책읽기를 통해 최고의 성군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100번 읽고 100번 필사를 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이와함께 궁궐에서는 재임 기간 중 1천800차례에 걸쳐 독서토론회를 주관했고 한글창제는 물론이고 과학, 음악, 미술, 농경, 복지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창조적인 결실을 맺었다.

살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하게 흔들릴 때가 있다. 태풍을 만난 것처럼 몸을 가누기 힘든 순간도 있다. 위기의 순간에 나를 일으켜 세우고, 결전의 그날에 내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을 통해 얻은 지혜가 아닐까.

산과 들이 온통 봄꽃이다. 사람들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즐기며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뛰어다닌다.

이왕이면 꽃들의 만찬장에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어떨까.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배가 부르는 황홀경에 빠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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