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에르메스는 장인 3천여 명의 숨은 땀과 기예의 산물이다. 바느질에서부터 다듬고, 깁고, 입히고, 디자인하는 일련의 과정에 장인의 빛나는 조력이 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르메스재단'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을 후원한다. 미술상을 통해 매년 젊은 작가들의 창작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을 후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 폐광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단을 설립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인도시장에 진출하려는데 곳곳이 암초였다. 가난과 질병, 교육과 복지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지역민의 건강불감증이 기업매출의 장애요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지역 보건전문가를 양성하고 5만개의 보건소를 건립했다. 노바티스의 이같은 지역밀착형 사업으로 인도 전역을 건강하게 가꾸고 기업의 사회적 참여라는 긍정의 효과를 거두었으며 매출증대라는 이윤창출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제화기업인 탐스슈즈는 소비자가 신발을 구매하면 한 켤레를 제3세계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 이슈를 기업마케팅과 연계시켜 호응을 얻은 사례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KT&G는 홍대앞에 상상마당이라는 문화공간과 전국의 대학생 문화서포터즈를, 현대자동차는 기프트카 지원프로젝트를, 대한항공은 해외 박물관에 멀티미디어 가이드 후원을, SK브로드밴드는 1관계사 1사회적 기업운동을, 현대카드는 현대뮤직 프로젝트를, 삼성전자는 CSR3.0프로젝트를, 하나은행은 방글라데시 아동보육과 여성자립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이윤을 단순히 사회에 환원하거나 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소통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데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책무(CSR)라고 부른다. 부의 창출과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과거와 달리 기업과 사회간의 새롭고 폭넓은 계약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고도화, 산업사회의 다원화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상존하는데 기업은 이를 슬기롭게 풀어야만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1984년에 인도의 유니온 카바이트사 보팔 참사사건으로 2천800명이 사망하고 5만명의 중환자가 발생한 바 있다. 미국의 핵발전소 유출사건과 알레스카 유조선 침몰사건, 일본의 핵방사능 유출사건, 미국의 담배회사 소송 등 굵직굵직한 대형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업과 사회가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대정신을 낳게 된 것이다. 단순한 경제적 책임한계를 넘어 법과 윤리적 책임환경과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 그리고 지속성장과 인류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책무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국내 1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10개 미만의 기업만 생존하고 있는 것은 변화와 혁신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지, 미래사회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진단하고 앞서가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는 기업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나 복지시설에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선행의 개념을 뛰어넘어 기업 고유의 가치를 살리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그리하여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문화를 정착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기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하며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우리 지역의 기업은 이와 관련해 지나치게 느슨하고 무디다. 한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하겠지만 위기일수록 새로운 돌파구, 즉 시민사회를 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이 벼랑 끝에 있을 때 발벗고 도와줄 사람은 바로 회사원이고, 그들의 가족이며,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문화CSR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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