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재식 저산교회 목사

"밤낮 칠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기 2장13절 말씀은 욥이 당한 고난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구들의 순수한 모습이다. 결심하고 마음 먹었던 초심(初心). 그 안에는 평안과 기대감이 섞여있기 때문에 만족과 자족의 안정감이 들어있다. 그 초심이 날마다 쓸쓸하지 않도록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있어야 하고 확고한 자세로 남아 있어야 평강을 또 다른 곳으로 흘러 보낼 수 있다. 순수한 마음과 평강의 내공으로 서있고 바라볼 줄 알아야 평강을 만드는 사람이다.

얼마 전 친구내외와의 만남이 근심을 덜어줬다. 친구가 히말라야로 떠나기로 하고 적립했던 비용을 내가 섬기는 교회의 성전 땅매입 헌금으로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교회적으로도 성전 땅 매입을 위한 헌금을 적립하고 있었고 내가 섬기는 교회 출신 안수집사님께서도 매달 성전 땅 매입 헌금을 보내 주셨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던 터에 감사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만 가득한 세상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이면에 문제없이 무슨 보람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도 올라온다.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그 친구내외와 식사자리가 마련되었다. 식사를 나누는 동안, 내내 평안함이 묻어있는 감사함을 누려보았다. 감사한 오후를 만들어 일상에 찾아온 대화와 애찬이 넘치는 평화를 안고 새기는 시간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친구가족과의 만남에서부터 식사 준비 그리고 자녀들 이야기, 신앙이야기로 주제삼아 이어지는 대화는 아름다운 복과 슬기로운 대화를 누리고 나누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얼마 전에 욥기를 묵상하며 욥기에 담긴 말뜻과 묵상으로 인한 레마의 말씀을 찾아보고 찾아지는 축복 중에 욥기 4장부터 37장까지 세 친구와의 대화가 가득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의 대화에서는 원인이 있는 결과라는 논리를 적용하여 죄악의 결과로 당하는 고난을 강조했고, 원인과 결과, 인과응보의 논리와 하나님의 권위인정 인간의 연약성의 인정도 필요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욥에게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넉넉한 믿음이 필요하고, 비판보다는 포용하려는 자세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의 사연과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는 인간은 고유성과 연약성을 기억해야 한다. 이론과 논리보다는 임상과 실험정신으로 여러 학파, 학문, 각 단체와의 교류로 인한 다양성과 다원화를 추구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과 평안을 유지하는 길이다. 트러블 메이커로 각인되는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자기의 수준과 영역에서 최고, 최선의 논리를 펼친 것에 불과하지만 욥에게는 고난, 아픔의 우여곡절의 구렁텅이를 지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정의 결과는 욥에게는 갑절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원인이 되어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인류의 삶의 과정 속에서도 이 논리는 적용되고 있지만 사랑인가? 논리인가? 은혜인가? 율법인가? 의 명제아래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욥과 논리로 다가간 친구들 사이에 동화의 마음이 없는 건조한 마음들을 겪어내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기에 평강과 사랑의 논리로 아픔과 문제근원을 풀어보자. / 저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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