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시티 그린파워 6. 주민 참여형 마을만들기의 모범 양달말 공동체

청주 사직2동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도심 속에 이야기길이 만들어지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기업도 탄생했다.

예술가들은 낡고 쇠약해진 마을에 문화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관의 지원은 없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마을 변화의 원동력이다. 지난 4월 초에는 서울시 공무원 92명이 사직2동을 견학했다. 마을 만들기의 전국적 모범으로 우뚝 선 사직2동 양달말 공동체를 소개한다. / 편집자

사직2동은 부침이 심한 마을이었다. 청주 흥덕구 사직동에 여객자동차 정류장이 있을 때만 해도 작은 방까지 세가 나갈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터미널이 흥덕구 가경동으로 이전하면서 마을은 빠른 속도로 활력을 잃어갔다.

한 때 인구 3만 명을 넘어 분동까지 고려됐던 곳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2008년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이후에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빈 집과 빈 방의 비율을 나타내는 공실률은 최고점에 달했다. 개보수도 안 되고 신축은 말할 것도 없고 증축도 안 됐다. 모든 건축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 옛 화교학교에 653예술상회를 열고 사직2동을 도화지 삼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험한 이종현 작가



조합이 결성됐지만 재개발은 지지부진했다. 2008년과 2009년, 2010년이 지나면서 '재개발=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했던 주민들의 기대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 개보수가 되지 않는 지역에 남아 있으려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사직2동에는 현재 1천70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서민들은 지출 부담이 더욱 커졌다. 악순환이다.

주민들은 "주변에 무당집만 들어오고 길고양이 천지"라며 "청주시내에서 기반시설이 가장 취약하고 어린이 놀이터가 없는 지역은 사직2동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풋풋했던 동네, 인정이 넘쳤던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주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라고도 했다.

# 마을 속으로 들어간 공공예술의 실험

사직2동의 본격적인 변화는 문화의 옷을 입으며 시작됐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높았던 동장은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벌이고, 화가와 작가들은 폐교된 화교학교에 들어와 공공예술 실험을 진행했다.

낡은 회벽에는 코끼리가 그려졌고, 외진 모퉁이에는 큰 눈망울의 사슴이 등장했다. 중앙도서관과 충혼탑 인근에는 솟대와 항아리가 놓여졌다. 시내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사직동을 지역의 명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 낡은 회벽에는 코끼리가 그려졌고, 외진 모퉁이에는 큰 눈망울의 사슴이 등장했다. 653예술상회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지난 2009년 사직2동 동장으로 마을 재생 사업을 기획한 청주시청 이중훈 공원녹지과장은 '국보로'의 상권활성화와 지역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일본의 마찌즈꾸리를 벤치마킹했다고 회고했다.

보름에 한 번 꼴로 축제를 열자 반목했던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꽃을 심고 항아리와 솟대를 연출하면서 행정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이 과장은 "동사무소와 직능단체가 함께 중앙도서관 마당에서 진행한 해돋이 행사는 주민 화합과 상가번영회의 희망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고 평가했다. 문화를 바꿔야 마을이 활성화 될 것이라는 이 과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2011년 3월 옛 화교학교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인 '653예술상회'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에는 활력이 돌았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심이 높았던 이종현(46) 작가가 트럭 한 대를 몰고 화교학교에 둥지를 틀면서 사직2동은 작가들의 도화지가 됐다.

최근에는 주소지까지 사직2동으로 옮기며 완전한 주민이 된 이 작가는 예술과 문화 활동가가 아니라 주민으로, 사직동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중요한 키워드는 '재미'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하던 계획이 어느 날 가슴으로 내려오면 그때 일을 시작하는데 그 마음이 사직동에서 움직인 것이죠."

▲ 충북여성포럼 교육문화분과에서 양달말 공동체를 찾아 마을의 변화과정을 듣고 있다.



#사직2동 도심 속에 이야기길을 만들다

예술가들에게 도시재생과 재개발 논의는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다.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것, 문화예술을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골목을 누비며 마을 주민들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사직2동 지역주민들의 삶을 엮는 '주민자서전'이다. 단절됐던 주민간 소통에 길을 내는 일은 마을의 역사를 깊이 알게 되는 계기도 됐다.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역사, 문화, 예술, 전통 등 지역의 모든 자원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있던 벨벳 공장과 도축장, 1970년대 조성된 새마을 주택, 과거 두부집, 옛 우물터의 사연들을 채집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렇게 해서 수집된 이야기가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최인호(49) 사직2동 도시재생추진위원장은 "사직 이야기길이 도심 산책코스로 자리잡으면 마을을 알릴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주 도심에도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못지 않은 아름다운 이야기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민간주도로 진행하다보니 아쉬움이 많지만 여유자금이 생기는 대로 차근차근 이야기길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권 살리기를 위해 선택한 '마을기업'

오로지 주민들의 참여로만 이뤄지는 사직2동의 사례는 자립수복형 마을 만들기에 해당된다. 주민들 스스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상권을 살리고 마을을 가꾼다.

어린이 놀이터는 물론이고 이렇다할 기반시설도 조성되지 않은 사직동 국보제약 골목은 상인들에게 특히 인기없는 구역으로 통한다. 터미널 이전과 재개발로 인한 인구유출, 소방차도 들어갈 수 없는 달동네에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하다.

마을기업은 상권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기획됐다. 이야기길 조성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과거 두부가게 터가 발견되고, 폐쇄된 두부공장을 다시 설립하자는 의견이 쏟아졌다.

▲ 마을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는 민병창 대표. 전직 목수인 그는 재능기부로 가게 내부 공사를 도왔다.


직접 손으로 만든 차별화된 두부를 생산, 판매해 수익금을 다시 지역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기업 설립 논의도 무르익게 된다.

주민들은 마을기업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국밥축제를 개최하고, 예술상회와 함께 후원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가게를 마련해 내부 공사를 마쳤다. 모든 공정은 사직2동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주민들이 기획에서 설립까지 참여한 마을기업의 이름은 이 마을의 고유명인 '양달말'로 정해졌다. 두달 전 영업을 개시한 (주)양달말 마을기업(사직2동 649-39번지, 대표 민병창)에서는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한 손두부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음식은 재래식 손두부와 비지, 다양한 콩식품. 민병창 대표를 비롯한 6명이 참여하고 있다. 다음은 민병창(59) 대표의 말이다.

"재래식 손두부를 통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고 싶습니다. 사직 이야기길과 연계해 지역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빈 점포를 활용해 도시재생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양달말이 자리를 잡으면 주민들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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